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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말고는 친구가 없다.”1

외로운 투사 쿠르드 이야기

by 박세환

개인적 하소연에 가까운 이야기를 좀 풀어보려 한다.

내 페북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얼추 아시겠지만 난 친구가 별로 없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평생 그랬다.

남자인데 태생적인 남성성 결여인지 공놀이를 굉장히 싫어했다. 공을 무서워했다. 유년기와 성장기 동안 다른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볼을 차고 놀 때면 난 최대한 거기 섞이기 싫어서 스탠드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곤 했더랬다.

(여자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않는 건 젠더 권력의 편향 때문이라는 개소리는 진짜 논고의 가치도 없다! 나처럼 그냥 하기 싫었던 것뿐인 거지! 그래도 니들은 여자라서 공 안차도 같이 어울릴 친구들이라도 있었잖아!!)


공 관련된 놀이들은 다 싫었다. 아마 여러분들이라면 이러한 나의 성향이 동성 친구들과의 원활한 소통 및 교류활동에 어떤 장애물로 작용했을지 어렵잖게 집작들 하시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PC게임의 발전은 나와 같은 아이들에겐 정말 가뭄의 단비와 같은 현상이었다. 밖에 나가 공을 안 차도 무언가 다른 남자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 것이니까. 혹자는 게임 발전이란 현상이 히키코모리의 기원이 되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 같은데(특히 여성부. 이런 류의 비판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적어도 나에겐 단비처럼 소중한 현상이었다.


취향이 취향이다 보니 공과 관련된 스포츠 게임은 하지 않았다. 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전쟁, 투쟁의 서사가 있는 게임들이었다. 물론 스타크래프트도 좋은 예이다.

관심분야는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원래 좋아했던 삼국지를 비롯해서, 자연히 역사 속의, 혹은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전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 가슴속 어떤 부분과 공명을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혹한 상황에서도 지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투사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한 구석을 뭉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비록 악역이라 해도, 난 그런 캐릭터들을 무척 좋아했다.


20191018_184633.png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가문의 철권통치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시리아 내전은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분야이다. 독재자 아사드부터 해서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 IS, 그리고 그 속에 개입해 각자의 잇속을 챙기려 하는 각종 사악한 외세들까지 수십여 세력들이 있었다. 이는 마치 삼국지 군웅할거를 연상케 했다.


그 속에서 나는 ‘쿠르드’라고 하는 가련한, 그러나 위대한 투사들을 보았다. 이들은 3천만의 인구를 가지고도 독립된 국가를 가지지 못했다. 이들은 터키, 이란, 시리아, 이라크 4개국으로 나누어진 채 절망적인 독립투쟁을 반세기가 넘도록 벌이고 있었다.(우리도 식민지배를 겪었지만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리에겐 그저 ‘일본’이라는 하나의 적이 있었을 뿐이지만 이들에겐 4개의 적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일관된 외교적 방향성을 설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보통 중동국가들은 자신들끼리 의견 통합이 안 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쿠르드 독립 저지’라는 측면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일치된 모습을 보여왔다. 각지의 쿠르드 저항세력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도 없이 짓밟히면서도, 심지어 자신들끼리 내부투쟁을 벌이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왔다.

그리고 그들은 시리아 분열의 혼란 그 속에서도 조그만 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만

또 그렇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악착같이. 끈질기게


“산(山) 말고는 친구가 없다.”는 그들의 고독한 여정은 분명 내게 강한 정서적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대지를 방황하는 유비 현덕이며, “나와 같은 약자들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20191018_184128.png 내전의 한 축. 쿠르드 인민수비대(YPG)


IS의 파상공세 속에 이들이 보여준 투혼은 마치 영화 ‘300’에 나올법한 그런 것이었다. 이들은 절체절명의 절망 속에서도 악귀처럼 버텨내었다. 결국 그들은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소중한 도시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투혼 신념과 용기는 지구 반대편에서 이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미국마저 감동시켰고 그 결과 쿠르드인들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난 정말로 기뻤다.

보통 다른 또래 터울의 남자들이 잘 나가는 축구팀을 응원할 때, 나는 피와 화염 연기로 뒤덮인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쿠르드의 전사들을 응원했다.

남들이 첼시나 맨유, 아스날을 응원할 때

나는 YPG, SDF, 페쉬메르가를 응원했다.

그들이 웃을 때 나도 같이 웃었고 그들이 울 땐 나도 같이 울었더랬다.


-To be continue


20191018_184341.png Asia Ramazan Antar. 199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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