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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말고는 친구가 없다.”2

외로운 투사 쿠르드

by 박세환

아!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와 우정, 신념과 고집, 무수한 피 흘림들과 이것들이 뒤얽혀 만들어가는 어떤 거대한 서사를 그저 “계산서에 ‘0’이 몇 개나 붙어있는가?”하는 개념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천박한 상인 놈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쿠르드 투사들에겐 너무나 불행한 일이었다!


트럼프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그들의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단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들을 터키에 팔았다. 에르도안의 손아귀에 넘겼다! 국내외의 엄청난 반발에 마지못해 “터키가 선 넘으면 경제보복하겠다.”라고 말은 해 놓았지만 별 의미 없는 립 서비스로 보인다.

이제 이용가치가 다 떨어진 그들은 버려지고 그렇게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전차와 전투기의 물결 속에 짓밟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당신들이 응원하는 스포츠팀이나 선수들이 패배하고 슬럼프에 빠진 모습을 보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게임’은 조금 더 가혹하다. 패배한 측은 그저 실의에 빠져 좌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총에 맞고, 피 흘리고, 그렇게 죽어간다. 패배한 쪽의 선수들은 승리한 쪽의 선수들에 의해 모두 총살된다. 선수들의 집은 약탈당하고 또 불살라진다. 무고한 갓난아기는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 그렇게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죽어간다. 이게 이 바닥 게임의 룰이다.


나는 이미 누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누군가는 심장을 관통당했고

그의 동료는 목이 찢어져 피를 쏟다 비명도 못 지른 채 과다출혈로 죽어갔다.

누군가는 불타는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렇게 산채로 구워진다.

누군가는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 그렇게 도망도 못 간 체 전차의 무한궤도에 깔려 이승과 작별한다.

도시가 불타오르고 절망한 여인과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친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선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 불타고 일그러진 모습들을 생생한 사진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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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안 우파 내지 극단적 자유시장 신봉자들 중에 이번 트럼프의 결정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 애초에 네오콘과 군산복합체 자본가들이 더럽고 역겨운 이윤추구를 위해 중동으로 파고들어가 쑥대밭을 만들고 다닌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들로 인해 만들어진 중동의 혼란상은 반드시 치유되고 복구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런데 떠나려면 그간 질러놓은 것들을 수습하고 떠나야 맞는 거다. 최소한의 평화구도를 정착시킨 뒤에 러시아와 이란, 터키 등 모든 관련자들과 함께 빠지는 것이 맞는 거다.(최근 뉴스에 의하면 러시아가 이걸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 트럼프는 푸틴만도 못 하다는 거다.)


돈 때문에 들어와 놓고 이제 와서 돈 깨지는 거 아깝다고 이렇게 혼자서 빠져나가는 것이 책임감 있는 모습인가? 또 그렇게 미국 혼자서만 빠져나가면 이란 터키 러샤도 같이 손을 뺀다던가?

이런 식으로 혼자만 빠지게 되면 그동안 성조기 아래서 미국과 함께해왔던 중동의 친구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거지?


남의 집을 부순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부숴놓은 집을 보상해주거나 복구해 주고서 떠나는 것이다. 벌려놓은 상황을 수습해놓고 떠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함께 진행되지 않는 일방적인 철수는, 첫째로 남의 집을 멋대로 부숴놓았으니 잘못이며, 부숴놓은 상황에 대한 뒷정리를 하지 않고서 ‘피해자들’을 방치한 채로 떠난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잘못이 된다.


20191018_225104.jpg 터키의 독재자 에르도안


각자 제 살길이 바쁜 국제사회는 그저 입으로만 터키를 규탄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규탄은 터키 입장에선 이미 진즉에 각오하고 있었던 측면이기도 했다.

어느 나라도, 지역 강국 터키와 ‘실질적으로’ 충돌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의 외면 속에서 결국 이 불쌍한 사람들은 거의 항복에 가까운 굴욕적인 휴전조약에 사인을 하고야 말았다. 이로써 터키는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인들이 살던 거의 모든 지역을 손쉽게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2년 전 그들의 이라크 형제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의 오마쥬이기도 하다.(독립을 추진했으나 국제사회의 외면과 이라크 정부군의 강경대응으로 영토만 상실한 체 실패로 끝남.)


쿠르드인들의 선택이 단순한 시간 끌기 용 전략인지, 정말로 전의를 상실한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하지만, 지금으로썬 그들에게 별 다른 희망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별 다른 수가 없고서야 이제 그들은 터키군의 지배를 받아들이던가 그게 싫으면 자신들의 집과 가축과 이웃들, 친구들을 내버려 둔 채 멀리 떠나야만 한다.

그렇게 또다시 쿠르디스탄의 산골과 중동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정처 없이 헤매게 되겠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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