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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13. 2023

모 페미의 글에서 느껴지는 진~한 혐오의 향취

가난한 사람이 더 폭력적인 게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를 말 하지말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17078?sid=102


모 페미니스트가 한쿸일보에 토설해 놓은 잡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 이 머시기는 한남들의 빈약한 학업열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사실 내용 자체로는 못 할 말 아니긴 하다. 애써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업성취도 측면에서 남학생들이 보이는 상대적 열위 현상은 남녀평등 이후 현대 제1 세계 국가 공교육에서 자주 논의가 돼 온 부분이니까. 전두엽 발달 속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뒤처지기 때문이라는 이런 '과학적' 연구결과도 있었더랬다.


문제는 글이 다루려 하는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다루는 태도에 있다. 같은 소재라도 이를 다루는 태도에 따라 글의 느낌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이를테면, 교육에 있어 '한남들'이 상대적으로 더 뒤처지는 부분이 있으며, 그들이 겪는 좌절들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논해보고자 하는 이런 '따뜻한 시선'으로 소재를 다루었다면 우리는 이 글에 대해 애써 흥분할 필요가 없었을 게다.


물논 우리의 '페미니스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페미니스트가 소재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저 경멸과 혐오 그 잡채. 이것 봐! 한남은 이렇게 열! 등! 해! 죽어! 죽어버려 이 역! 겨! 운! 유충들아!




필자가 가끔 언급하는 좌파철학하는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난한 사람이 더 폭력적인 게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를 말 하지 말라."


(이건 지젝이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고, 지젝의 사상을 언급하며 좌철자 친구가 했던 말을 필자가 오해했던 거 같다..)



여기서 함 논해보자.


가난할수록 더 폭력적이라는 현상이 실재한다면, 이 명제가 참이고 현상 자체는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를 논해야 한다. 논해져야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비추어지고, 지속되는 논의 속에서 해결방안도 찾게 될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말하지 말라 그러지?


사실 좌철자가 이 문장을 통해 논하고자 했던 지젝의 입장은, 그 현상 자체를 아예 다루지 말라는 게 아니다.


가난할수록 더 폭력적이 되는 현상이 실재할 때, 어떤 이들은(극우?) 이 명제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구원'이 아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부추기려는 의도로 활용한다.("봐봐, 가난한 이들은 이렇게 쓰레기야!") 결국 좌철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상 자체를 은폐하라는 게 아니라, 어떤 실재하는 사실을 자신들의 혐오를 정당화시키는 명분으로 활용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좀 고상하게 말해서, "명제 자체는 사실일지라도, 그 명제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거짓"인 상황.


이를테면, "흑인들의 학업 성취도가 백인들보다 낮고, 범죄율은 더 높다."라는 '사실'은 '어떤 의도'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인권과 공감이 넘치는 글이 될 수도, 인종차별 가득한 극우 대안우파 선동 장광설이 될 수도 있다. 이 명제를 가지고 "보라! 깜딩이들은 이렇게 열등한 족속들이다! 어우~ 한심해!"이런 태도를 도출한다면, 저기 페미 장광설을 배출하신 배우고 잘난 페미니스트께선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결과적으로 이번 페미의 글이 윤페미의 그 저명한 한남유충 철학논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배설물일 수밖에 없는 건 다루고 있는 명제들의 사실 여부 때문이 아니라 그 명제를 다루고 있는 태도 때문인 것이다.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보다, 그 무언가에 접근하는 정신문화관념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 전자가 아닌 후자가 존재자의 특성을 더욱 잘 설명해 준다. 지난 수년간 필자의 글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온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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