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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14. 2023

페미니즘이 근대정신의 정점이야?

의도된 과장

힐러리 클린턴들은 페미 피씨야말로 서구식 근대이성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페미 피씨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푸틴 두긴들은 서구식 근대정신의 정점은 결국 페미 피씨와 같은 기괴한 사회일 뿐이기에, 이제 서구식 근대정신이라는 걸 의심해 보고 그들이 부정했던 전근대 봉건사회의 장점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체주의. 전통 권위 보수주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세계인들의 정치지성(?)을 양분하고 있는 양 대 진영 전부가 "페미 피씨는 서구식 근대정신의 정점"이라는 전제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 피씨는 서구식 근대의 정점이기에, 서구식 근대를 존중하는 이라면 페미 피씨까지 받아야 하는 거고 페미 피씨에 반대하는 이라면 '서구식 근대'라는 총론 자체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 측 모두 페미 피씨와 서구식 근대를 철저하게 동일시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을 좀 가져보자. 페미 피씨가, 정말 '서구식 근대정신의 정점'인 게 맞나?




오늘날 서방세계 페미 피씨 창궐의 기원이라는 68 혁명이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다는 건 입이 달도록 언급해 온 부분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여기서 말하는 모더니즘은 종종 '근대'로 번역되는 부분이고, '포스트'는 '후기'라는 뜻인데, 사상언어에서 포스트(post)는 그 의미가 좀 더 다양해서 단순한 시기상의 후기를 의미함을 넘어 반대(anti), 탈출 등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종종 '탈근대주의'로 번역되는 것이다.


탈근대. 말 만 들어도 이미 '근대'에 대해 반대, 거부하는 사조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페미 피씨들의 선조 격인 68 혁명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근대'를 비판하고 부정했었다. '근대'는 왕과 성직자의 명령에 의해 옳고 그름을 나누던 사회를, 이성과 논리의 명령에 의해 옳고 그름을 나누는 사회로 끌어올렸을 뿐 이라며 말이다.(프랑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한 뒤, 성당을 때려 부수고 그 자리에 '이성의 신전'을 세웠던 예는 정말 상징적이라 하겠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 '근대' 조차 벗어나 진정으로 정답이 없는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으며, 그렇게 그들 특유의 '반문화' 풍조를 만들어 나아갔던 것이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서구, 백인, 남성, 성인이라는 존재를 근대식 이성의 앞잡이들로 보았고, 그래서 이들을 적대하며 그 대립항으로써 비서구(제3세계, 동방), 유색인종, 여성,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토록 천착했던 것.


(따지고 보면 이것부터가 얼마나 폭력적인 이분법인가..! '남성'은 이성적 폭력을, '여성'은 감성적 포용을 상징한다...?)


물론 위에 언급한 포스트모더니즘 사례만 가지고 페미 피씨가 서구식 근대이성의 완전한 대척점이라 주장한다면 이 역시 과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요점은..


서구에 '근대'가 들어선 이후 전에는 없었던 무수히 많은 사상 사조들이 등장했고 또 사라져 갔는데, 이들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었지만 또한 어떤 구석에서는 서로 대립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무수히 많은 사상 사조들 중 '어떤 사조'가 특별히 더 근대정신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근대'라는 것부터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엄청난 역사적 격변 속에서도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근대이성의 실패. 고로 우리는 전근대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와 같은 주장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전 세계를 양분한 냉전의 종결조차도 그러했을진대, '고작' '페미 피씨의 실패' 따위가 서구식 근대정신 그 전체의 종말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저 '힐러리 클린턴들'과 '푸틴 두긴들'이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위해 과장과 왜곡을 일삼고 있을 뿐.



'힐러리들'은 페미 피씨만 가지고는 이제 지지받기 힘드니까 '좀 더 거대한 존재'를 자신들의 후원자(?)로 삼으려고.      



'푸틴 두긴들'은 페미 피씨를 향한 불만을 이용해 현대 민주주의체제 전체를 부정하고 자신들을 정점으로 하는 전근대 남성 가부장적 봉건 질서체계를 다시 수립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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