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나라 프랑스 답게, 니스에서는 vélo bleu라는 공유 자전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평소에도 자전거 타는걸 소소히 즐거왔던 남편은, 요 며칠 아침나절을 자전거로 니스의 해변을 달리며 그 재미에 푹 빠졌다. #I love Nice 조형물에도 미리 가보고, 애견 해변 위치도 알아보면서 이래이래 한 게 있으니 가보자 라고 하기에 덩달아 우리도 좋지만, 아침 시간을 온전히 혼자 재미나게 쓰는 게 조금 샘이 나기도 한다.
그 대신 나머지 인원들은 우리가 먹고 싶은 빵을 야무지게 고르는 것으로 그 아쉬움 섞인 소소한 복수를 대신한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지만 피레네 산맥 아랫동네와 윗동네의 빵 맛은 참으로 다르다. 스페인 빵은 프랑스 빵에 비해서 식사빵은 밍밍하고, 단 빵은 너무 달고, 디저트는 투박하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야심 차게 barra(스페인식 바게트 올리브유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 3개 들이를 사면 하루만 지나도 몽둥이처럼 딱딱해져 버린다. 뜨겁고 건조한 스페인 공기가 빵에는 좋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이게 프랑스 빵이다!라는 심리적 조미료도 가미되는 것 같다. 그만큼 프랑스 빵들은 특별하고 감동을 준다.
바게트(baguette)는 바삭한 껍질을 베어 물면 잘 구워진 누룽지처럼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잼이나 버터를 바르지 않아도 몇 개나 집어먹을 수 있다. 바게트에 버터를 바르고 햄을 넣은 샌드위치인 쟘봉 뵈르(Jambon-beurre)나 치즈를 가미한 쟘봉 에멍딸(Jambon-emmental)은 단순함이 최고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는 샌드위치이다.
또, 버터향 듬뿍 파삭한 크루아상(croissant)도 빠질 수 없다. 거기에 파이 결 사이사이 초코가 느껴지는 쇼콜라틴(chocolatine- 프랑스 남부에선 뺑 오 쇼콜라 pain au chocolate라고 하면 싫어한다고)까지 모두 후각부터 미각까지 만족시키는 기본빵들. 그리고 모든 디저트가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에끌레어(eclair)는 보이면 한 조각이라도 사야 했던 나의 최애 디저트이다. 한 입 물었을 때 부드러운 빵 안에서 배어 나오는 부담스럽지 않은 슈크림 필링이 엄지를 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오늘 점심으로는 커다란 쟘봉 뵈르 두 개를 준비했다. 거기에 모두가 좋아하는 납작한 복숭아를 가족 머릿수에 맞춰 깨끗이 세척하고, 하나씩 키친타월로 감싼다. 이러면 먹을 때 이 맛난 과일의 달콤하고 끈적한 즙이 손을 찜찜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정성껏 점심을 준비해 갈 오늘의 도시는 그라스(Grasse)이다.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궁극의 향수 제조술을 찾기 위해 찾아가는 바로 그 도시 말이다.
멀리서 보기에 그 도시는 그렇게 웅장해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건물들 위로 높이 솟아 있는 커다란 성당이나 훌륭한 성도 없었고, 눈에 뜨일 만한 그럴듯한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그마한 교회가 몇 개 시야에 들어올 뿐이었다. 성벽은 견고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여기저기 성벽 사이로 건물들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특히 아래쪽 평지로 이어지는 곳은 허물어진 정도가 더 심해서 시 전체가 마치 너덜너덜하게 해어진 옷자락처럼 보였다. 무수한 침입과 정복으로 인해 허물어진 후 복구된 듯한 그 모습은 다시 침입을 받는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 같았다. 물론 힘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태만함이나 강인함 때문인 듯했다.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때는 별로 과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 도시는 발치에 분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족한 듯이 보였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으면서 자신감에 차 있는 이 도시가 바로 그라스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중>
오렌지빛이 감도는 도시의 골목골목을 노란 쁘띠 트레인을 타고 돌아본다. 향기에 관한 한 과연 성지인 곳답게 눈길 닿는 어디에나 향수나 비누 가게가 있다. 핑크빛 우산 장식을 통과한 빛이 바람에 맞춰 도시의 색감을 이리저리 바꿔주자 보이진 않아도 오렌지 꽃과 노란 재스민, 다채로운 분홍색의 들장미들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향기의 성지 중심에, Fragonard 프라고나르 브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간 100만 명이 찾는다는 관광명소가 된 향수 박물관뿐 아니라 이 도시 안에서 미술 및 패션 박물관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자체 공장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로 조향 하고, 오직 자체 유통망으로만 공급하는 독특한 폐쇄성에서 오히려 희소성을 얻고 가치를 인정받는다. 즉, 샤넬이나 디오르의 향수같이 집 근처 올리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향이 아니라, 알만한 사람이 찾아서 소비하는 ‘니치(niche)’한 물건이라는 것.
애초에 난 향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다. 집안이나 몸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을 피하는 수준이랄까. 그마저도 향을 이용하기보다, 환기를 하거나 향초로 냄새를 태워(?) 없애거나, 아주 단순한 비누나 샴푸 향을 이용하는, 향에 관한 한 아기와 같은 수준으로 단순한 인간이다. 이런 향 일자무식 쟁이가 향수 박물관을 돌아보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끝의 그곳, 기념품샵(여기에선 물론 향에 관한 모든 것들이 있는 그곳)엔 나 마저도 눈이 휭휭 돌아갈만한 아름다운 향 제품들이 많았다. 물론 당시 최선을 다해 몇 개 골라왔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냥 그때 사 왔어야 했어!’라는 생각이 나는 것들이 있다. 무관심했던 사람조차 욕망을 가지게 만드는 향기의 힘이다.
프라고나르, 라는 브랜드 명은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그라스 출신의 거장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유명한 그림 ‘그네’나 ‘책 읽는 소녀’(도서관이나 피아노 학원에 꼭 걸려있곤 하던) 등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그 그림들을 그려낸 작가이다.
풍성한 레이스와 반짝이는 비단, 앙증맞은 리본으로 장식된 드레스로 풍만한 몸매를 감싸고, 부드러운 진줏빛 살결 위 붉은 부분을 더욱 생기 있게 해주는 연지와 향내 나는 하얀 분을 바른 매력적인 표정의 소녀들과 귀부인들이 그의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이다. 로코코적 극적 사치 속에 흥했던 그의 예술 인생은 프랑스혁명으로 극적으로 쇠했고, 만년엔 고향인 그라스에서 비극적이진 않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여생을 살다 세상을 떴다.
그러다 20세기 초, 그의 그림들이 귀족들의 여흥과 쾌락을 위해 그려진 것이라는 오명을 벗고, 그 시대의 생활상과 인간의 은밀한 욕구를 가감 없이 그러 낸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단순히 여러 향수 기술이 발전되었다고 알려진 곳이었던 그라스에 이곳만의 특별한 자아-눈부시게 화려하지만 공기처럼 가볍게-를 부여하는 이름이 되었다. 앙시앵 레짐 Ancien Régime, 즉 구 체제를 전복했던 프랑스혁명조차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구 체제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고, 화려함이든 질박함이든지 간에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의 대상으로 객체화된 현대의 모습이 보인다.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루누이는 만물의 고유의 향기(인간에게서도)를 훔치는 데에 성공한다. 만약 그라면 프랑스 빵의 ‘아름다운’ 향을 그대로 담은 향수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바게트의 구수한 향, 크루아상의 고소한 윤기가 도는 향, 에끌레어의 부드러운 초콜릿과 달달한 바닐라 향, 밀푀유의 바삭함과 달콤함을 담은 향, 오페라 케이크의 묵직한 초코 위 새콤한 베리가 얹힌 향.... 그런 향이라면 나 같은 향 문외한도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고소한 버터가 듬뿍 발리고 짭짤한 햄이 어우러진 오늘의 잠봉 뵈르와 적당히 물렁해져 복숭아 향이 물이 오른 파라과는 공원에서 순식간에 먹어치워 졌다. 큰맘 먹고 산 프라고나르 오 드 뚜알렛을 뿌릴 때마다, 왠지 이때 먹은 빵 향이 더 기억날 것 같다.
(덧, 찾아보니 ‘빵 향 향수’(평은 좋지 않다)나 빵 매장에서 사용하는 ‘빵 향기’가 벌써 있다고 한다. 이미 눈치도 못 채고 수 없이 속아(?) 왔었던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