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떨어졌다. N연차 주부는 가족을 위해 호환마마도 업어치기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닥을 드러낸 쌀독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 빵이 맛있다는 프랑스에 있으면서 웬 밥타령이냐며 한심한 눈길을 보내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프랑스 빵은 정말 진심 레알 리얼리 맛이 있다.
하지만 많이 걷고 놀고 서양의 기름진 음식으로 느끼해진 입맛으로 돌아오는 길에, 칼칼한 라면과 함께 밥 한 사발 말아먹는 게 간절해지는 건, 빵 사랑과는 별개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니, 그 상황에서 혹여 빵이나 파스타를 먹더라도, 밥을 선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허전함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쌀을 사야 했다.
오늘은 하필 마티스 미술관에 가기로 한 날인데...... 그가 사랑한 이 도시에, 아시아 마켓이 있기를. 아, 있다! 유레카! 약간 외곽에 위치한 마티스 박물관에 다녀오며 들리기 적합한 위치에 작은 식료품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갈 준비하는 손이 바빠졌다.
오래전부터 난 마티스의 그림을 사모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하시던 명화 원화집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쳐보던 때였다. 예닐곱 권으로 이루어진 명화집은, 거대한 창으로 사악한 용을 잡는 성 조지의 그림으로 시작해 권을 지날수록 점점 현대로 넘어온다. 프레스코화에 몇 백 년이 지나도록 남아있는 천사의 도자기 같은 피부결이나 세밀하게 그려낸 금사 은사가 섞인 아름다운 예복, 스토리를 알고 싶게 만드는 신화 배경의 그림들은 어린 내 눈으로 보아도 사랑하고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근대의 그림들로 넘어올수록, 뭔가가 어려웠고 재미가 없었다.
점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때쯤, 그, 마티스(그땐 영어로 쓰인 이름을 읽을 수 없어 몰랐겠지만)의 ‘춤’을 보았다. 파랑과 초록과 빨간 사람들. 단순하고 선명한 메시지.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은 즐거웠고, 황홀했다. 그림 속 사람들의 움직임처럼 내 마음도 뛰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이렇게 짧고 쉽고 명료하다.
세 가지 색이면 충분하다. 하늘을 칠할 파란색, 인물을 칠할 붉은색, 그리고 동산을 칠할 초록색이면 충분하다. 사상과 섬세한 감수성을 단순화시킴으로 우리는 고요를 추구할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은 '조화'다. (마티스, ‘춤’(1910)을 그릴 당시)
그리고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된 나는 미술시간에 그의 그림 ‘춤’을 소재로 실크스크린(공판화의 일종)을 시도하며 첫 ‘모작’을 시도한다. 결과는 실패. 단순할 것 같던 그의 그림의 선을 심혈을 그려 베껴 그렸지만, 움직임도 엉성하고 구도도 이상하고 손댈수록 엉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마드리드에 온 후 시작한 유화 수업(코비드로 인해 무기한 쉬는 중...)에서 내가 그리려 택한 그림 역시 그의 그림 ‘고양이’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의 ‘노란색’이 단순한 노랑으로 칠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단 두 번의 수업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내 짝사랑은 두 번 모두 처절히 실패했다.
딸에게 내 이런 실패담을 이야기 해준 적도 없는데, 미술학원에서 명작을 따라 그려보는 주제였을 때 이 녀석도 마티스의 ‘금붕어’를 고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보는 눈이 모전여전인가 보다.
옛날에 그렸었던 금붕어 그림 기억나지? 그 그림 그린 아저씨의 미술관이야.
...... 으응, 그래요?
아이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할 찰나 매표소 직원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미션을 주었다. 그가 주는 세 장의 엽서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보는 것이다. 단순한 미션이었지만 아이들이 신날 거리를 준 친절에 새삼 감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밝고 그림 같은 풍경을 위해 이곳에 온다. 나는 북쪽에서 왔다. 1월의 색채와 그날의 찬란함은 나를 이곳에 정착시켰다. (Matisse, 1952).
1917년 니스에 온 뒤, 1954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의 빛은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나눠주었다. 작가는 37년간 니스에서 살며, 병마로 붓을 쥘 수 없을 땐 붓을 손에 묶어서, 그도 힘들 땐 가위로 종이를 잘라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오랜 기간 자신의 예술적 영혼의 고향이 돼준 니스에 대한 보답으로 근교 Vence의 교회당을 짓는데 자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소진하고 이곳에 묻힌다.
마치 37년간 무탈하게 해로한 부부의 러브스토리 같다. 한쪽은 변함없이 따뜻하게 상대를 보듬고 격려하며 마르지 않는 우물과 같이 감수성을 채워주고, 다른 한쪽은 그 기대와 믿음에 성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고 자신의 한계를 부수어가는 그런 관계 말이다. 하루만 더 (이곳에서) 살게 해 주세요, 라 빌었던 그의 기도는 아마도 영원할 이 도시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반복되고 기억되며 이루어질 것이다.
이 미술관은 마티스의 ‘절친’인 샤갈과 후안 미로의 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피카소와는 (사이가 나쁘진 않은)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천재적이고 앞서가고 똑 부러지지만 그림에서 그것을 감추려 하는 듯한 느낌의 피카소보단, 노력하고 진중하고 꾸준하고 무엇보다 즐거운 마티스에 영원히 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표라 해도 좋다)
그의 그림들 속 보이는 탁자들을 연이어 한참 바라본다. 복숭아, 배, 수박, 석류가 제철에 맞춰 올려져 있고, 어떤 땐 소담히 핀 수국이 있다. 그 방에선 아이들과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공부도 한다. (공부가 싫은 아이의 표정이 예술이다) 그의 창 밖에 드리워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도 보인다. 어느덧 그 방에 서서 져 가는 여름 해를 보며 오늘 저녁 뭘 해먹을지 고민하는 내가 보인다.
돌아오는 길 아시안 마켓에서 무사히(?) 쌀을 샀다. 그리고 튼실하게 속이 찬 배추 반포기(친절하게 반 포기로 잘라서 파는)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소금에 절여 풀을 죽이고, 헹궈낸 배춧잎을 양념에 썩 잘 무쳤다. 물론 한 가지씩 내 입맛에 맞춰 넣은 양념만은 못하지만, 제법 그럴싸한 겉절이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지글지글 반숙 계란을 부쳐 올리니 입맛도는 근사한 겉절이 비빔밥이다. 구수하고 아삭한 가운데 매콤함이 모든 피로를 푸는 맛이다. 입이 아쉬워 스테이크까지 구워내니, 어디서 사 먹는 것보다도 훌륭하다 자화자찬이 절로 나온다.
그의 그림 따라 그리긴 여러 번 실패했지만, 이거 한 그릇은 대접해서 실패하진 않을 것 같다. 주책맞게 "아마 겉절이를 니스에서 무쳐서 더 맛있나 봐요"라고 바보 같은 코멘트도 붙일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