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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들아, 이 언니를 용서하련

by pobi미경


수영의 영법 중 평영이라고 있다. 중급정도가 되면 가르쳐 주는 영법인데 쉽게 말하면 개구리 수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말 그대로 다리를 쫘악 벌렸다가 빠르게 오므리면서 앞으로 쭉 나가는 영법인데 난 수영을 처음 배울땐 이 평영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수영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기술이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다리만 폈다가 오므리면 앞으로 잘 나갈 것 같았다. 수영을 배우지 않았던 남편도 어렸을 때 목욕탕에서 놀면서 쉽게 연습했던 기술이 이 평영이라며 어려울 게 없듯이 얘기했기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평영을 배우게 되었다.

“자 회원님들, 이렇게 이렇게~ 발바닥을 딱 꺾고 다리를 쭈욱 폈다가 순식간에 오므리면서 튕겨 나가는 겁니다. 자 이렇게 이렇게~”

선생님은 한 마리의 우아한 개구리가 된 채 쑤욱 쑤욱 앞으로 전진했다. 훗, 저 정도는 쉽게 할 수 있겠군. 난 회심의 미소를 띄운 채 개구리 자세를 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발바닥을 꺾고 쓔욱쓔욱- 쓔우..욱-.. 꼬로록.. 꼬로로록.. 엉덩이는 툭 튀어나온 채로 다리는 물속에서 버둥대고, 내 몸은 배에 물이 찬 종이배처럼 기우뚱거리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누군가 멀리서 “엉덩이만 뜬다~”고 외쳤던 것 같다. 맞다. 내 엉덩이만 영혼처럼 떠 있었다.

“회원님!! 살아서 헤엄쳐야지 죽은 개구리가 되면 안 됩니다! 다리를 쭉쭉 뻗어서 이렇게~ 이렇게~ 차주셔야지 축구공 차듯 다리를 뻗어버리시면 절대 못 뜹니다~!! 자 다시 한번!!”


개구리의 저주는 그날부터 시작됐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아무리 기를 써 봐도 평영으로는 1cm도 앞으로 나가지가 않았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바닥으로 가라앉기만 했고 여유롭게 퐁퐁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구슬프게 쳐다볼 뿐이었다. 같이 하는 언니들도 평영이 보기보다 어렵다고들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조금씩이라도 떠서 나가기는 했다. 난 수영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선생님께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하고 언니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특훈을 받아봤지만 도저히 설명대로 몸이 따라주지가 않았다. 이 망할 개구리자세. 이 망할 개구리놈들!!! 개구리마저 원망스러웠다. 왜 그자세로 헤엄을 쳐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인가. 니들은 개구리 몸 이니까 잘 되는 거겠지만 난 물갈퀴도 없는 맨발바닥이라구!!! 개구리를 원망하며 내가 니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냐며 울부짖었다. 그랬더니 문득 개구리와의 잘못된 인연의 시작이 떠올랐다.


내 고향은 저어기 우리나라의 끝에 있는 산 좋고 물 좋은 거제도라는 곳이다. 지금은 교통이 편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관광지로도 가는 곳인데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골섬이었다. 화장실은 구멍만 뚫어놓은 푸세식이였고 부엌은 아궁이에 불을 붙여야 가마솥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6.25전쟁에서나 나올만한 옛날 초가집이었다. 부모님에게는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이였지만 어렸던 내게 그 시절의 기억은 풋풋하고 아련한, 자연과 함께 하루종일 뛰놀 수 있었던 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바다가 천지였던 그곳에서 수영을 못했던 아이도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동네 애들은 여름만 되면 빤스만 입은 채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겁 많고 소심했던 나는 신나게 노는 애들을 그저 뙤약볕을 맞으며 쟤네들이 언제나 나오려나 하며 자외선만 한가득 쬘 뿐이었다. 그때라도 수영을 좀 배워뒀으면 물 만난 갈치는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제주에 살고 있는 지금도 바다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못하는 건 억지로 할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비록 수영은 하지 못했지만 산을 뛰어다니며 내가 주로 했던 게 있었다. 바로 개구리잡기. 개구리를 왜 잡고 다녔냐고? 꼬치에 찔러서 자..잡아먹으려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는데 난 개구리를 잡아먹는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많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 시절엔 개구리 잡아먹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정말이다. 비겁한 변명으로 보여질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고 토실토실한 놈들을 많이 잡은 날에는 불구덩이에 모여 사이좋게 한 마리씩 꼬치에 찔러 구워서 뜯어먹곤 했다. 아 듣기만 해도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꼬치에 찔러 구워서 뜯어먹다니. 지금이라면 어디 고발프로그램에 눈만 가려진 개구리꼬치녀가 된 채 “찍지마!! 찍지말라고!!”라며 외치며 도망갈 일이지만 그때는 그 행동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불에 구워진 개구리 뒷다리는 쫄깃했고 오징어맛도 풍겼으며 사..살을 발라먹는 매력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 내가 평영으로 죽도록 힘든 건 아마도 그시절 내가 구워먹어 댄 개구리들의 복수일 것이다. 오동통한 놈들로 골라서 뒷다리를 구워먹어 놓고 개구리수영을 하겠다니 잠들었던 개구리들이 내 뱃속에서 다 들고 일어나 시위를 할 만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먹어치운 뒷다리들을 끄집어 낼 수도 없고 그 시절 내게 먹힘을 당한 개구리들에게 지금 와서 추모제를 지내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상의할 곳 없는 나는 또다시 남편에게 상의를 해보았다.

“오빠, 내가 평영이 안되는 건 분명 어릴 때 잡아먹은 개구리들의 저주 때문이 분명해. 이 저주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포비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연습만이 살길이다. 괜히 죽은 개구리들 떠올리며 입맛 다시지 말고 경건하게 오백 번 연습이나 하자. 이렇게 이렇게~ 쓔욱 쓔욱~!”

“이 수친이 개구리 같은 놈아!! 오빠 뒷다리 보니까 개구리신이 씌인건 내가 아니라 오빠구만! 오빠 뒷다리부터 잡아먹어 버릴꺼야!!”

남편은 도망갔고 난 홀로 생각했다.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개구리들에게 사죄해보자고.


평영을 할 때마다 개구리들에게 속삭였다. 제발 나를 용서하고 너의 뒷다리 힘을 내게 실어달라고. 물론 오늘도 여전히 평영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뭐랄까. 개구리수영을 하면서 개구리와의 추억을 떠올려서랄까. 개구리가 조금은 더 친밀감 있게 다가왔다. 개구리자세에 조금 더 몰입이 되어갔고 나는 개구리다라며 빙의도 조금씩 하게 되면서 처음처럼 가라앉지만은 않고 있다. 퐁퐁 거리며 멋지게 나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얼추 자세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자 양심 이란 게 있는 나란 여자 물속에서 개구리들을 위해 몇 마디 중얼거리기도 한다.

“미안했다, 얘들아. 그땐 내가 많이 어렸다.”

멋지게 튀어 오르지는 못해도, 조금씩 뜨기 시작한 나는 지금 개구리 인생 2막을 시작 중이다. 개구리수영은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그 어려움조차 유쾌하게 안아보고 싶다. 언젠가, 퐁퐁 멋지게 튀어오를 날도 오겠지. 그날이 온다면 개구리들아, 이 언니를 꼭 용서해주련! 개골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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