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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Jun 19. 2024

아빠의 시한부 선고



아빠는 작년 말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 8번의 항암치료를 진행했다. 그리고 오늘, 길어야 5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아빠는 투병기간 동안 선과 악을 매일 오가고 있다. 후회와 허탈함이 몸을 감쌀 땐 모든 이에게 미안해하다가 억울함과 분노가 몸을 감쌀 땐 너희들 때문에 내 몸이 이렇게 아픈 것이라며 악에 받친 짜증과 스트레스를 뿜어낸다. 아빠는 살아왔던 삶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아빠는 집 밖에서는 호탕한 호인이었다. 운이 따라 하는 사업들도 잘되었고 사람도 끊이지 않았다. 아빠의 지인들에게 항상 듣는 얘기는 ‘참 사람 좋은 형님’이라는 말이었다. 은혜를 받으면 두배로 갚았고 사람들에게 잘했으며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몇십 년 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집안에서의 아빠는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아빠는 괴물로 변했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몽땅 몇 배로 올려서 집안에서 풀어댔다. 폭언과 폭력은 끊이지 않았고 매일이 살얼음이었다. 엄마는 평생 불행했고 언니는 폭력에 못 견뎌 집을 나갔고 소심했던 나는 아빠의 매질이 내게 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아빠는 투병기간 몇 달 동안 내게 하루에도 10통씩 매일 전화를 한다. 아픔과 억울함 분노 서운함 모조리 내게 토로하며 어린 시절 이후 나를 또 한 번 얽매이고 숨이 막히게 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니 지금도 여전히 아빠의 감정배설을 그냥 매일 들어주고 있다. 어린 시절 하루하루가 지나가길 기다렸듯이 지금도 난 여전히 그때처럼 하루하루를 참아내고 있다.      


오늘 아침 몇 년간 차고 있던 염주가 끊어졌다.

줄이 끊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염주알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아빠의 운이 끊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조금 전 아빠의 시한부 선고 연락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난, 슬프지가 않다. 민망할 정도로 감정에 변화가 없고 그저 조금 우울한 소식을 접한 것 같은 지금 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이 맞는 건지, 나는 자식이 맞는 건지, 슬퍼해야만 할 것 같고 눈물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내게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준비하고 처리할 일들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고 있다.     


어릴 때 난 억울했다. 밖에서 혼자 잘 사는 아빠의 모습에 왜 행운은 아빠에게만 있는 것인지, 불쌍한 엄마에게 도대체 행운이란 언제 오는 것인지.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행운은 행복한 사람에게 오는 것이지 불쌍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었다. 행운은 그저 행운일 뿐 선함과 악함을 따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 한들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 행복의 기운덕에 행운은 계속 따라붙는다. 아빠는 모든 스트레스를 집안에서 다 풀었기에 집 밖에선 행복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고 집안에 남겨진 우리들은 그저 계속 불쌍하게 숨죽여 살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 갇혀버린 아빠에게 더 이상의 행운은 오지 않는다. 아빠의 투병으로 인해 엄마는 아직도 힘드시지만 집안에서도 아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엄마에게도 자유와 행복이 곁에 머물러줄 것이다. 행운과 행복 악함과 선함 투병과 삶 그리고 죽음까지 한꺼번에 많은 생각이 밀려온다. 이 많은 생각 중에 아빠에 대한 서글픔이나 안타까움은 없지만 내 감정을 억지로 만들고 싶진 않다. 그저, 한 번도 머물러주지 않았던 집안에서의 행운이 힘들지 않게 더는 늦지 않게 들어와 주길 바라본다.      


염주를 다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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