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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l 12. 2024

그 강에는 뭔가 있다

소울

There’s nothing you can do in the town. It’s just a small town.

그 마을에서는 할 게 없어. 그냥 작은 마을이야.


I liked it. I liked it a lot.

난 좋았어. 많이.


구 사이인 아이슬란드 아가씨 둘. 그러나 아이슬란드 동부의 에이일스타디르에 대한 그들의 평은 완벽히 반대였다.


음… 그럼 난 가볼게.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이번 여정의 종착지인 세이디스피외르뒤르로 가는 경유지로 에이일스타디르를 선택했다.  





작은 마을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먼저 숙소와 붙어있는 뒷산에 올랐다. 후사빅에서의 놀라운 하이킹 경험 후 나는 어딜 가든 산을 찾는 자가 되었다.



이 마을은 나에게도 짧게 하루만 머물고 가는 경유지이다. 산에서 내려온 후 지도를 보니 숙소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강이 있다. 하루를 마감해야 할 저녁 시간.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갈까 말까. 망설여지면 일단 간다. 한국에서는 산책도 하지 않던 나는 일단 몸을 움직여본다.  




해가 지는 것을 꼭 구경해.


응? 해가 안 지잖아?


며칠 전, 이전 숙소 주인의 말에 나는 반문했었다. 선셋이라니. 백야잖아. 해가 지지 않는 시즌이잖아.


그래도 살짝 어둑해지는 그 순간이 있어. 거기서 더 어두워지지는 않지만. 밤 아홉 시쯤?  




저녁 8시 30분. 숙소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길에는 사람이 없다. 10여 분을 걷자 눈앞을 꽉 채운 강이 나타난다. 그리고 내 걸음은 놀라움으로 또다시 느려지고 조심스러워진다.


새들. 그곳은 새들의 보금자리였다. 수많은 새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속의 오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새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새들아, 미안해. 잠시만, 잠시만 머물다 갈게. 그리고 너네… 너무 멋져.”



해가 지고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의 밀도와 방향. 강. 그리고 새들. 그 풍경. 그곳은 온전한 자연의 공간이었다. 뒤돌아 서서 몇 걸음만 하면 인간이 지어놓은 숙소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일개 스냅사진으로는 절대 절대 담기지 않는 곳. 그럼에도 나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면서 애원하는 심정이 들었다. 뭐라고 말 좀 해줘.  



내게 물은 트라우마다. 40년 전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은, 발 끝이 닿지 않았던 그 기억은 내게 너무나도 생생하다. 20년 전 다이빙 용 깊은 수영장에서 다리가 마비되는 경험 후 나는 내 인생에서 깨끗하게 물을 포기했다. 나는 물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지금 홀로 이 강을 바라보고 있다. 이 영적인 순간을, 말없이 나를 수용해주고 있는 그녀를.  잠시 머물다 가겠다고 자연에 읍소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두 시간을 머물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에이일스타디르. 그냥 지나칠 뻔했던 별 볼 일 없는 마을. 그러나 내게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곳.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지나치고 흘려보내고 있을까.




여행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그렇게 바로 얼마 전의 기억을 복기하면서, 아른거리는 그 시간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때로는 잡고 싶어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억은 벌써 희미해지고 있어서 가까스로 떠올려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한쪽 몸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망연자실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종착지에 대한 이야기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돌연 슬픔이 몰아칩니다. 가만히 앉아 이 여행의 시작점으로 걸고 또 걸어서 끝까지 가 보았습니다. 거기 우리 아들이 있더라고요. 내가 아들 이야기를 하지 않았구나. 내 여행 이야기에 아들 이야기가 빠졌구나. 아들 생각이 안 났구나. 아들 생각이 났지만 나는 담담했구나. 어쩌면 나만의 온전한 여행 이야기를 쓰고 싶었나 보다. 간절히 나이기를 원했나 보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이길 원했나 보다. 그리고 실제 그랬다…

 


브런치는 하나의 주제로 30회까지 연재할 수 있네요. 벌써 27회까지 왔습니다.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직 다 쓰지 못했다는 것에 안도가 됩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나 자신에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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