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이 바싹 말랐다. 입술을 물어뜯으며 날짜와 시간을 흘깃거렸다. 아이슬란드로 출발 8일 전. 그리고 모든 준비는…
작년 6월. 아이슬란드로의 항공권을 질렀을 때의 내 마음은 이랬다. 앞으로 1년의 시간이 남았어. 아주 충분하지. 그동안 나도, 남자 셋도 충분히 준비하는 거야. 자율성을 키울 좋은 기회야.
핑계를 대자면, 일이 정말 많았다. 아니, 언제나 많다! 미치도록 바쁘다. 집에서도 뛰어다닌다. 회사 일과 끝이 없는 집안일, 아이들 일로 그때그때 챙겨야 할 것들. 주말 행사.
- L 부인, 집안일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 매일 해야 되는 거요. 그리고 끝이 없다는 거죠.
≪L부인과의 인터뷰≫ 중
그 와중에 아이슬란드 도서관에서 한국 그림책을 소개해 보겠다고 용감 무식하게 제안했다. 누군가에게 한두 권만 읽어주려던 계획은 욕심과 애정, 애국심이 더해져 50권이 넘어버렸다. 모든 출판사에 연락해서 대부분의 책을 지원받기까지의 그 과정, 책만 가져가긴 아쉽다며 감히 후원을 받아 마련한 각종 물품.
복병이 있었다. 그림책의 각 문장에 영어 해석을 달아 붙이는 작업이 그것이었다. 같은 타이틀 중 한 권은 일러스트레이션에 집중하여 보시고, 나머지 한 권은 영어 해석을 참고해 보시라는 꽤 기특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본문의 한국어 텍스트를 모두 타이핑하고, 이를 다시 영어 번역에 알맞은 문장으로 고치고, 이를 chatgpt에 돌리고, 다시 올바른 영어 표현으로 정정하고, 프린트하고, 프린트한 종이를 문장 별로 자르고, 책에 붙이는 고단한 작업에 나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커터 칼로 쓱 자르고 보니 댕강 중간이 잘린 문장들, 붙이고 보니 심각하게 삐뚤 빼뚤인 문장들. 그녀들이 간절했다. 내가 도움을 청하면 바로 달려와 도와줄 여인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 혼자 해야 할 부분이었다. (결국 엄청나게 후회했다.)
대책 없이 아이디어가 추가되었다. 시작은 그림’책’이었지만 책의 내용과 관련된 문화도 곁들여 소개하면 좋을듯했다. 한복에 대한 책도 발표 할 거니 복돈에 대한 개념을 알려주며 전통 봉투에 신권 천 원씩을 선물로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더 예쁜 봉투를 찾아 헤매고 다니고, 40장의 봉투에 천 원씩 담는 작업은 남편을 시켰다.
발표 일주일 전부터 현지 도서관에 사전 전시가 계획되어 있었다. 아이슬란드로의 해외 배송에는 2주에서 3주가량이 소요되니, 그것을 감안하여 아이슬란드 도서관에 관련 택배를 모두 보내놔야 했다. 첫 번째 택배를 보내고 며칠 후 간신히 두 번째 택배를 부쳤다. 수많은 물건을 택배 상자에 담아 포장하는데 땀이 비오듯 흘렀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배송 대금까지 결제를 마친 후 돌아서며 우체국 직원 분께 물었다. 점심 메뉴는 뭐로 할까요, 라고 묻듯 자연스럽게 툭.
“그런데 제가 천 원짜리 마흔 장을 짐에 넣었는데 상관없겠죠?”
현금성은 천 원짜리 상품권 하나도 공항 탐색대에서 스캔 되어 반송된다고 했다. 봉투 마흔 개를 어느 박스에 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 두 박스를 다 뜯고 돈을 빼고 다시 포장했다. 난 뭐 수백만불 돼야 걸리는 줄 알았지. 영화를 보면 그렇잖아요.
막판까지 발표할 책의 타이틀을 결정하지 못했다. 번복하고 또 번복했다. 좋은 책은 너무 많은데 실제 입말로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책,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을 책을 찾다 보니 자꾸 책만 검색하고 있었다. 이미 책은 택배로 다 보낸 후인데 결국 리스트에도 없던 책 두 권을 선정했다.
출발 10일 전, 평소에 잘 이용하지 않는 옆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 헉! 유아실의 입구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입구에 진열된 책을 조용히 꺼내어 온몸으로 껴안고 데스크 사서분께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빅북도 대출이 되나요?” ≪장수탕 선녀님≫의 빅북은 약 가로 40, 세로 50센티미터. 무게도 상당했다.
현지 도서관 행사가 끝나면 이후 배낭여행을 해볼 예정이었다. 운전을 못 하는 나는 캐리어 없이 배낭 하나의 짐으로 18일을 버텨야 했다. 배낭에 그 책이 들어갈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줄줄이 꿴 호랑이≫와 ≪수박 수영장≫ 빅북도 보였다. 역시 품에 안았다. 검색해 보니 우리 시의 시립도서관에서 이곳에만 있는 빅북들이었다. 이건 운명이야. 데스티니라고…
이후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국제택배 배송 현황을 조회했다. 첫 번째 택배를 보낸 지 11일, 아이슬란드 내에 물품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두 번째 택배는 4일째 프랑스에 머물러 있다. 제발!!!
출발 10일 전. 바빠 죽겠지만 지인이 추천해 준 영화 ‘Wild(와일드)’를 보았다. 일상의 모든 희망을 잃은 여성이 수십 일간의 극한 트레킹을 홀로 완성해 가는 실존 영화이다. 중간중간 눈물을 쏟으며 영화에 몰입했다. 엔딩크레디트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트레킹을 해볼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지? 시내에 가면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건가? 그럼 그 무리에 합류하면 되는 건가? 깃발이라도 있는 건가? 자 출발합니다, 하면 옹기종기 따라가면 되는 건가? 만일 걷다가 힘들면 다시 돌아와서 시내에 숙소를 잡으면 되는 건가? 아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지? 동서남북은 어떻게 구분하지? 이거 거의 걷다 보면 로키산맥이 나오겠지, 이런 심보인데? 그럼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만 걸어보지 뭐. Chatgpt에게 물었다.
- 레이캬비크에서 도보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디야? 걸어서 얼마나 걸려?
- 레이캬비크에서 남쪽으로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는 약 22km로, 도보로 6시간이 소요됩니다.
흠… 운전을 못 하는 나는 22km에 대한 감이 없었다. 도보로 6시간이라 함은…. 할만한 건가? 만일 혼자 가다가 여섯 시간 만에 도착 못 하고 밤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불현듯 아직 짐 쌀 목록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텐트를 사야 할까 고민하다가 텐트를 쳐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잠시 트레킹에 대한 검색을 중지하고 쇼핑 앱을 열었다.
아이슬란드의 물가는 대략 우리나라의 10배. 출발 9일 전, 새벽 배송으로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양말 15켤레. 속옷 15장. 군용 식량 6개. 참치캔. 햇반 작은 것. 우비. 방수 장갑. 수영복. 뭐가 좀 많이 빠진 것 같은데 뭐가 빠지고 뭐가 안 빠졌는지 모르겠다.
도서관 행사에 온 신경이 쏠려 현지에서 어디를 여행할지 짜놓지 못했다. 그제야 검색에 들어갔다. '아이슬란드는 대중교통으로 여행이 어려울 수 있으며, 패키지 프로그램 가격이 상당한 편입니다.' 여행 예약 사이트인 부킹닷컴에 접속하여 레이캬비크 인기 패키지여행 1위를 예약했다.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하여 여덟 시간 동안 버스로 세 군데의 랜드마크를 살펴보는 당일 코스였다. 금액은 9만 원대. 훌륭했다. 백만 원짜리 여행 패키지도 많았지만 일단 하나라도 예약한 스스로에 흡족해했다. 일단 여행은 이거면 됐어.
세탁, 요리, 청소 및 각자의 스케줄에 대한 엄마 의존도가 백 퍼센트인 두 아들과 남편. 출발 9일 전. 나는 그제야 네 가지 아이템을 주문했다. 첫째, 캡슐 세탁 세제. 하나씩 넣으면 되니까 편하잖아. 광고 봐. 조정석도 하잖아. 둘째, 3단 분리 수거함. 인간이면 분리 수거하겠지? 셋째, 음식물 쓰레기통. 봉지가 아니라 쓰레기통이면 남자들도 가져다 버리겠지? 넷째, 4단 빨래 바구니. 건조기에서 세탁된 옷을 꺼낸다. 각자의 옷을 빨래 바구니에 분리한다. 입고 싶을 때 입는다. 빨래를 개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가기 전에 집 안을 싹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비행기를 놓칠 판이었다. '여성들이여, 나 홀로 여행을 시도하라!' 나는 그러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개뿔. 누가 누구에게 조언을.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일상의 컨베이어 벨트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남자 셋의 각자도생 연습을 시켜둬야 했다는 것을. 멍해졌다. 출발 일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집에서 뛰쳐나오겠구나. 결국 또 그렇게 되겠구나. 양쪽 부모님께 절대 의존하지 않겠다며 아직 여행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똑-딱-똑-딱. 3주간의 여행 기간의 회사 일은 다 해 놓고 가기로 했다. 내일부터 해야 한다. 8일 전이다. 똑-딱-똑-딱. 그리고 또 뭐가 빠졌더라…? 똑-딱-똑-딱-똑-딱-똑-딱. 시간이 저 앞에서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20대 무렵에 나이를 먹는 게 두려웠다.
젊음이 전부고 아줌마가 되면 끝이다. 나는 그렇게 주입 받은 세대였다.
아마도 일종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줌마가 된 지금, 그때 내가 뭘 두려워했나 싶다.
누가 우리를 위협했을까.
아줌마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기쁨에 한계를 둘 필요는 없다.
- ≪거미를 찾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