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대안학교, 글방, 영부인, 그리고 아이슬란드 도서관
모든 것의 시작은 1년 전 만난 한 권의 책이었다. ≪행복의 지도≫의 저자는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찾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그중 아이슬란드 편을 읽다가 나는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 자체로 찬양 받는 나라.’
중3 아들은 다니던 학교가 싫다며 전학을 주장했다. 훌륭한 교육 철학을 가진 대안학교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학부모 활동의 중심에 있던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좋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전학 후 새로운 환경에서도 아들은 예기치 못한 여러 문제에 부딪쳤고, 덩달아 나도 그 파도에 휩쓸렸다. 수많은 감정적 소용돌이 끝에 결국 나는 모든 것의 원인으로 나 자신을 지목했다.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나를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나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겼다. 엄마로서 철저히 실패한 자.
다시 책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 자체로 찬양 받는 나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기에서는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부터 나는 아이슬란드를 꿈꾸기 시작했다.
휘몰아쳤던 감정과 달리 막상 실행은 쉽지 않았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내 역할을 중단하는 것도, 나 홀로 해외여행을 감행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때 내 양팔을 붙잡아 준 것은 여자들이었다. 아들과의 갈등 속에서 숨죽여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비틀거리듯 세상 밖으로 나왔고, 동네 책 모임과 글방에 스며들었다. 그곳에서 나의 수줍은 꿈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가슴의 소리를 들어요.” “포기하지 마요.” “내 꿈도 싣고 가요.” 그렇게 나는 아이슬란드 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8개월 후의 여행을 꿈꾸며 나는 아이슬란드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인의 편견 없는 삶의 자세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완전한 성평등을 위해 여성들과 연대하고, 용감한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서사를 전한 영부인의 이야기는 뜻밖의 자매애로 다가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었지만 아이슬란드는 이미 내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또한 아이슬란드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문득 그림책이 떠 올랐다. 이미지라는 매개체는 언어와 무관하게 통하지 않을까? 한국의 좋은 그림책을 누구에게라도, 단 몇 권이라도 소개하면 어떨까?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아이슬란드 도서관’을 검색해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가 아이슬란드에 가는데 한국의 그림책 몇 권을 소개해 보면 어떨까 해요. 저는 이 분야 전문가는 절대 아니지만, 어디서든 몇 분께라도 읽어드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방법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답장의 첫 문장은 뜻밖에도 한국어였다. 사서 릴랴는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2019년부터 한국어를 독학했으며,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했다. 마침 그녀가 일하는 도서관에 한국어 책이 없어서 구성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쏘아 올린 작은 메시지에 19시간 비행 거리의 아이슬란드 도서관 사서가 응답했다.
“하고 싶은 거 뭐든지 말해요! 홈페이지에 공지 올리고 한인 커뮤니티에도 알릴게요!”
나는 기쁨과 두려움으로 비명을 질렀다. 당시 그림책 동아리 4개월 차 햇병아리였던 나는 동아리에 SOS를 보냈다. 그들은 마치 대기하고 있었던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 일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한국의 아름다운 그림책을 해외에 알리자고 말하는 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도서관 내 부스를 설치해 책을 전시하고, 한글 자모음 스탬프 찍기 등의 체험 행사를 기획하고, 아름다운 한글 단어가 쓰인 캘리그래피 엽서와 부채를 제작하여 선물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시립도서관에 한국 책이 없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출판사로부터 책 후원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