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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26. 2023

2편 대중목욕탕에서 소환된 20년 전 기억

3년 만에 가 본 찜질방 내 목욕탕에는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다. 그나마 탕 안에서 멍 때리며 생각을 비워내곤 했었는데 여기서조차도 시선을 미디어에게 빼앗기는구나, 싶은 생각도 잠시, 열심히 TV를 쳐다본다. 그래봤자 속 터지는 소리만 하는 뉴스 채널이지만  화면과 자막을 노려보고 있으니 탕 속의 시간이 잘도 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메인 탕에서의 38도라는 온도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탕에 살짝 발을 담글 때 찌르르하게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이어 조심스럽게 몸을 탕 속으로 밀어 넣어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목까지 쭉 빠져 들어가면서 "어 좋다..."라는 소리가 새어 나오려면 좀 더 뜨거워야 한다. 그렇게 나는 42도라고 쓰여 있는 약초탕으로 직진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느낌을 경험한다. 그래 이거지. 



흡족해했던 것만큼 탕 속에서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내친김에 사우나실도 들러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습식 사우나 특유의 축축한 풀향이 확 감싸고, 나는 갑자기 22년 전의 기억으로 소환된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학연수 차 날아간 캐나다. 여행 중 사우나 일정이 있다는 소식에 나는 반색했다. 대중목욕탕이 몹시도 그리웠던 터였다. 남녀가 함께 들어가는 식이라 부랴부랴 스포츠웨어 비스무레 한 것을 구매했다. 전후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주저하며 사우나실 문을 열었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습기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듬거리며 들어가 앉았고, 가만히 있다 보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며 드문드문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다. 좁은 공간에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게는 백인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때 기가 많이 죽었다. 다니던 학원에는 워낙 여러 인종이 많았다. 홈스테이 가정에는 총 5 개국의 사람들이 복작이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백인 사이의 작고 마르고 유일한 동양 여자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 듯했다. 스물네 살이었지만 나는 아직 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 봄, 나는 아이슬란드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 아이슬란드는 얼음과 용암의 나라로, 동네마다 야외 온천이 있어서 지나다가 손쉽게 들를 수 있다. 과연 이번에는 쭈뼛대지 않고 그곳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으려나. 혹시 코리언 아줌마 정신을 발휘하여 옆 자리의 사람에게 호탕하게 말도 붙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5개월 후의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는 대로 두고 볼 것이다. 






22년 전, 나는 우리 집이 IMF로 경제는 이미 무너졌고 가정도 곧 해체될 것임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 가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못 간 거라고 부모에게 항의했고, 우리 과에서 외국에 다녀오지 못한 이는 나뿐일 거라고 압박했다. 배움에 대한 한이 있기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그들이 딸을 캐나다로 보내기 위해 빚에 빚을 얹어야 함을 알지 못했다. 환율이 폭등하여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속속 한국으로 귀환될 때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에게 돈을 붙이기 위해 ATM기 앞에 서 있을 때마다 손이 떨렸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야 들었다. 듣고 나서야 알았다. 



"휴우......" 한숨을 쉬고 사우나실을 나왔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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