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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27. 2023

3편 대중목욕탕에서의 그지 같은 사색

엄마. 여자. 기억

때타월을 하나 샀다. 아들만 둘이라 혼자 때를 밀고 있는 이 순간이 고즈넉하면서도 살짝 쓸쓸하다. 작은 녀석이 세 살까지는 목욕탕에 데려오곤 했다. 유아용 탕 안에 철푸덕 앉아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조잘조잘, 참방참방, 신나게 놀던 녀석.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목욕탕 안을 뛰듯이 걸어서 매 순간 조마조마했던 기억. 이제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그때 그 아가.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가 되면 더 그리워질 기억. 불현듯 생각이 친정 엄마에게로 미쳤다. 언제나 혼자 목욕탕에 가고 혼자 때를 밀고 있을 우리 엄마. 부실한 딸내미 손목을 믿지 않아 냉큼 때타월을 뺏어다 본인이 손에 닿는 대로 등을 밀곤 하던 모습. 칠순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도 생계를 위해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고 계시는 엄마.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몸살기가 올 것 같으면 겨우 시간을 내어 목욕탕에 가겠지.






"만 원짜리까지 다 줘서 목욕탕 갈 돈도 없어."

결혼하고 자기 자식까지 있는 성인 아들에게 돈을 다 줘버려 목욕탕 갈 돈도 없다고 딸에게 말하는 엄마. 나는 소리 지르고 싶었다. 제발 그만두라고, 무슨 병신 같은 짓이냐고. 하지만 진이 다 빠져버린 엄마의 허탈한 표정 앞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나. 나는 엄마에게 고개를 돌리고 미친 듯이 반대방향으로 뛰어가버리고 싶었다. 뒤를 돌아보면 엄마에게 붙들 릴 것 같아서, 그렇게 얼어붙을 것 같아서, 저주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매달 말이면 아들에게 걸려올 전화에 숨이 막힌다는 엄마였다. 나도 죽겠다고, 내가 죽겠다고 왜 말을 못 하나. 그마저도 없는 돈을, 숨 쉴 정도는 남겨둬야지. 나는 그때 동생 전화를 수신 차단 해놓은 상태였다.



'기를 쓰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증오했다. 엄마가 자주 하던 그 말.

기를 쓰고 했다. 기를 쓰고 너희들을 키웠다. 기를 쓰고 아빠를 참았다. 기를 쓰고. 기를 쓰고......



왜.

그러니까 왜.

왜 그래야 되는데.

왜 그러고 사는데.






큰 아이가 아기였던 시기. 야근과 육아 사이에서 위태롭게 달리다가 우리 부부는 결국 서로에게 분노의 말을 쏟아냈다.
"헤어져. 애 핑곈 대지 말고."

나는 멍해졌다. 내가 원한 건 대화였다. 같이 해보기 위한 방법 찾기였다. 내가 이리 힘들다는 절규의 말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절벽에서 밀 줄은 몰랐다. 핑계? 아이가 핑계? 아직 아기인 이 아이가 핑계?



나는 본능적으로 움츠렸다. 몸짓으로, 시선으로 남편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무 반박도 항의도 하지 못했다. 그저 스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그 시기는 지나갔고 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 속수무책, 그때의 내 태도, 장칼로 쭉 그어진 그때 그 상처와 기를 쓰고 산다는 엄마의 말이 왜 그 순간 오버랩되는지. 그리고 이제는 그 아들의 아들인 손주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있는 나의 엄마.



그지 같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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