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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an 18. 2024

[딘편소설쓰기] 지구에 남은 최종 24인

그것이 당신이라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쓰기를 합니다. 
오늘은 창의적 글쓰기네요. 

주제: 

지구에 단 24명만 남아 있다. 

생존을 위해 각 사람에게 역할이 주어졌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눈이 떠졌다. 




34일째. 려고 누우면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스르륵 잠이 들고, 깨고, 일어나 음식을 먹고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차라리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그대로 죽었더라면……




34일 전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탄천에 산책을 하러 내려갔다. 한 바퀴를 돌고 육교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내 앞쪽에서 노부부가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지구가 멸망했고 내가 지구 엑시트 프로젝트의 최종 24인 리스트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야 들었다. 상황이 워낙 긴박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경우 일반인이라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 부득이하게 마취제를 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순순히 따라나섰다고 한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은 사라진 뒤였다. 내 가족, 친구들,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




우리는 지금 BFR 2호라는 우주선에 머물고 있다. BFR 내부는 실로 거대한 공간이고, 이 상태로 우리는 우주에서 50년 정도 머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BFR 1호는 38년째 무인으로 우주 상주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지구가 불타버렸다. 




나의 일거수일투족과 컨디션은 시스템에 의해 보고되고 있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자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지는 물건은 제한적이다. 일어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는 것이 내가 하는 일과이다. 글을 쓰려고 하지만 매번 무기력함이 몰려온다.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기록하고자 애쓰고 있다. 글쓰기는 내가 이 상황을 현실로써 이해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반면 과학자들은 무척 바쁘다. 내가 과학자라고 칭하는 이들은 실제 여러 파트에서 협업 중인데 다음 주에는 화성으로의 도킹을 시도해 본다고 한다. 




우리는 1인 1실을 이용하는데 내 옆방의 가족만은 예외로, 젊은 부부와 5살짜리 딸이 머물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온 백인 가족이고 아이의 이름은 애나이다. 그 예쁜 아이와 인사를 나눌 때가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다. 동시에 내 아이들이 떠올라 나는 잠시 또 무너진다. 우리 넷은 이곳에 있는 유일한 일반인이다. 우리 외에는 우주 탐사 경험이 많은 베테랑 셋과 지구과학자, 생명공학자 등 과학자가 다수이며 의료진과 도시설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들도 있었다. 인도인 람은 지금까지 네 번의 환생을 경험했고 놀랍게도 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 러시아인 엘레나는 IQ가 200이 넘으며 특정 DNA 형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애나네 가족 외에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가족을 잃었다. 그럼에도 각자가 선택된 이유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다들 묵묵히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의 극한 갈등은 아직 없다.




어떠한 직업적 특징도, 초인적인 능력도 없는 나는 여전히 이 상황이 혼란스럽다. 81억 명중 나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마지막 남은 24인의 지구인이고, 인간성은 우리가 지구에 있든 지구 밖 어딘가에 있든 지켜야 할 존엄한 것이라고 캡틴 맥스는 말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프고 약한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돌보고, 함께 인내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 한없이 연약하지만 또 강인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러한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마음을 유지해 달라고 맥스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조용히 무너질 수가 없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내 삶이 그랬듯 이제 나는 내 옆의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간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나아간다. 그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던지 간에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온기를 쬐어주고 싶다. 






  후기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제가 최종 24인의 생존자에 포함될 이유 - 성격, 특징, 가능성, 초능력 등 - 가 없어서 상상해서 썼습니다. 심지어 삶에 대한 의지도 강하지 않은데… 생존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 피곤할 것 같아요… 살아남은 자의 책임과 사명이란. 고백하자면 어떤 두려운 상황이 생기면 제일 먼저 깩 -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많거든요;;;; 



SF 소설도, 우주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아마도 영화에서 본 기억을 얼기설기 엮어서 썼습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왜 ‘나여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납득이... 쩜쩜쩜. 아마도 인류애가 가장 많았던 인물인 걸로 추측해 봅니다(그런데 그걸 어떻게 파악했지?). 


지구 밖을 나가더라도 인간성이라는 것이 주요 가치로 여겨지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순진한 생각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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