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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l 01. 2024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합니다

버스 타고 나 홀로 아이슬란드

“What a beautiful weather…”

정말 뷰리플 한 날씨군…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며 칙칙한 하늘에 cheers를 날렸다. 어제 아침 투어가이드 루카스가 아이슬란드에는 겨울, 혹은 실망스러움이라는 두 계절만 있다고 한 게 떠올라 픽 웃음이 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마음은 설렌다. 아직까지 날씨가 일정에 방해된 적은 없다.



아이슬란드에 온 지 6일 차, 지금까지는 수도 레이캬비크에 머물며 다운타운을 둘러보고, 도서관 행사를 치르고, 근교로 버스투어를 다녀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부터 본격적인 배낭여행의 시작이다.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 북쪽에 위치한 아퀴레이리(Akureyri)로 간다.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아이슬란드의 숙소는 현장 가격이나 인터넷 가격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날씨 등에 따라 일정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으니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내 경우는 총 18일의 여행 중 첫 3일 및 마지막 날 공항 근처의 숙소만 미리 예약해 두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머물기 이틀 전 이동할 지역의 숙소를 검색해 예약했다. 숙소의 위치, 가격, 별표(고객 평가) 범위를 설정하고 결과 치 내에서 빠르게 결정했다. 아이슬란드의 여행 성수기는 6~8월이다. 나는 5월에 여행을 시작했으니 때에 따라 숙소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대략 ‘수도가 있는 서쪽에서 북쪽을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다’라는 러프한 계획만 세워놨다. 혼자 여행을 가면서 일정을 촘촘하게 세우지 않아서 불안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뭐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혹시 도착지에 늦게 도착하게 되더라도 백야라 밤에 해가 지지 않는 계절이고, 며칠간 경험해 본 안전한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미리 예약하는 것과 나중에 예약하는 것, 어느 게 더 나은 결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성향의 차이도 클 것이고.



아이슬란드의 국토 크기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고,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아퀴레이리까지는 직행버스로 여섯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대중교통에 대한 정보는 구글맵에서 찾을 수 있다.





창 밖의 놀라운 풍경과 마주하다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 지금도 종종 화산이 분출하고, 최북단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그러한 지형적 특징 때문에 전 국토의 1퍼센트만이 농사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달 표면이나 지구 종말 후의 디스토피아적 모습, 즉 어둡고 척박하고 동시에 경이롭고 도대체 지구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 은 영화, 미술, 음악 등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 제임스본드, 스타워즈, 왕자의 게임, 톰 라이더, 베트맨비긴즈, 오블리비언, 인터스텔라, 토르, 캡틴아메리카 등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된 영화 제목만 봐도 연상되는 느낌이 있다.




아퀴레이리까지의 여섯 시간은 시시각각 바뀌는 바깥 풍경 감상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논스톱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고 5분에서 30분까지 중간중간 기사님께서 휴식 시간을 주셔서 더 좋았다. 장거리 운전자들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운행시간 안에 운전자와 승객을 위한 정차 시간이 아예 포함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You are a teenager, aren’t you?”

십 대시죠? 

마음의 여유 때문일까? 버스 기사 분은 노인 승객들에게 꼭 이렇게 물었다. 어르신에게 할인된 교통비를 청구하기 위해 연령 체크를 하는 건데 센스 있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할머니 또한 시크하게 엄지 척을 하신다.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슬란드인은 겉으로는 좀 표정이 없고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선하고 친절을 베푼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가 여행 중 만난 이들은 모두 표정이 밝고 위트가 있었다. 참고로 나는 약 400킬로미터 거리의 직행버스 비용으로 11만 원 정도를 신용카드로 지불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을 때는 거기에서 18일 내내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곳을 잊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대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여섯 시간 내내 대자연의 놀라운 풍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러는 동안 내 안의 뭔가가 스르륵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놓은 건지, 외부에서 풀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도서관 발표에 대한 아쉬운 감정도, 다운타운을 오가던 수많은 타인들과의 느슨한 고리 혹은 그들에 대한 인식도 사라져 버렸다. 내 몸은 버스 안에 있었지만 나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이 해체되어 어디론가로 솔솔 날아가 버린 느낌.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가벼웠다. 뭔가가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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