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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18. 2024

아침에 출발하는 등산의 맛은

밀양 산성산 일자봉은 맛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계획을 세웠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개 산책 시키고 일자봉 등산해야지.

일자봉은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았지만 늘 함께 해왔던 말이다.

밀양에서는 흔히 듣는 말이다.

일자봉이라는 말은 밀양 사람들의 건강과 일맥상통하는 말과 같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오고 내리는 산이다.

하도 일자봉, 일자봉 말을 해서 산 이름이 일자인가 했을 때도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재촉하는 개를 산책시키고, 잠깐 숨을 돌리니 벌써 시간이 8시가 다되었다.

지체하면 더 늦어진다. 더 늦어지면 안 갈 수도 있다.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필수품인 생수 500ml를 주머니에 넣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나름 이르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하산하는 사람들도 계셨다.

다들 부지런하게 삶을 살아내고 계시는구나. 시작부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산성산 초입 자세하고 귀여운 안내판

주차를 하실 분은 용궁사 입구 근처에 편하게 주차를 하시면 됩니다.

입구부터 화장실이 있어서 참 좋은데 위치가 제대로 설정이 안 되네.

하지만 용궁사를 찍고 오시면 산성산 등산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차들이 정말 많이 주차되어 있어서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산성산 초입부터 오르막의 연속에 계단입니다.

역시 등산은 시작부터 쉽지 않은 것 같다.

초입부터 경사가 높으면 마음의 고민이 깊어진다.

그러나 등산은 몸에 가득한 잡생각을 떨쳐내는 좋은 운동이므로 다시 마음을 고쳐 잡는다.

사색을 하기에 오르막길은 내 육체를 고단하게 한다.

그렇게 지쳐가면서 올려다보니

등산로에서 만난 시

이렇게 낭만이 있다니.

낭만이 있는 산이다. 산성산은.

시를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엔 갈길이 바쁘므로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가 여러 편이 있다면 내려와서 필사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순간 스치듯이 하고 또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올라가는 중간에 옆에 보면 위 사진과 같이 현 위치를 수치로 표시한 노란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이 번호를 세면서 가면 안전하게 갈 수 있겠구나.

혼자와도 외롭지 않은 든든한 안내자 같다.

저 번호는 몇 번까지 존재할까.(정상까지 가서 확인하니 39입니다)

다시 잡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비워야 한다. 그 속을 맑은 공기와 밝은 기운으로 채우고 돌아와야 한다.

산성산 등산로에 위치한 레포츠 시설

그러기엔 너무 재밌는 게 많은 걸.

열심히 오르다가 옆을 보니, 청소년 수련원에서나 체험해 볼 법한 기구들이 등장했다.

친구 여럿이 와서 체험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산 중턱에 이런 걸 설치할 생각을 하셨을까.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분명 원생을 이끌고 올라오는 체육선생님이 여러 명 존재했을 것 같다.

가족단위로 와서 아이와 부모가 여기서 즐겁게 노는 풍경도 그려졌다.

상상만 해도 다채로워지는구먼.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면

산성산의 위엄을 나타내는 위험경고판

마음이 웅장해지는 표지판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경사가 급하고 위험한 구역이므로 안전한 등산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지점에 오르기까지 내려오는 많은 등산객들을 만났지만, 이 계단을 오를 때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참 다행히도. 그 덕분에 안전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으니까.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계단을 오를 때는 항상 계단만 쳐다보고 걷는다.

위를 보고 오르면 더 힘든 느낌이 들어서 항상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 나무 계단 왠지 눈에 익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밀양시 가곡동에 있고, 가곡동에는 밀양역이 있다.

그렇다. 이 나무는 철도를 받치는 나무였던 것이다.

수십 년을 무거운 철도를 받치다가 이제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되어주는 버팀목이 되었구나.

너라는 한 존재는 이렇게도 뜻깊게 생을 살아내는구나.

그 쓰임새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가 쉬다가 다시 오르다 보면 정상이 눈앞에 가까워진다.

참고로 이 계단의 수는 500이다.

산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밀양 전경의 모습

아직 아침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하늘과 그 햇볕을 머금은 밀양의 모습은 평화롭고 잔잔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는데, 내가 막 이곳에 다다랐을 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더 조용히 이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왜?

산성산 정상 250m 전

지금부터 왜 일자봉이 일자봉인지 알려주는 길을 걸어가야 하거든요.

산성산 정상을 일자봉으로 부르는 이유는 정상에서 정상사이의 길이 일자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일자봉이라고 오르는 사람들이 불러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만 안다. 그러니 많이 돌아다니고, 경험하고, 느껴봐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만난 산성산 정상의 모습


이까지 올라왔는데 정상까지 안 오면 서운하지.

기념샷까지 찍고 오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그리고 나는 다시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왔다.

예전에 다른 길로 가다가 모르는 길로 가서 고생했던 기억이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나게 내려가다가 오르면서 봤던 표지판이 생각났다.

옹달샘 92m 전 표지판

옹달샘이 궁금했다.

나는 이미 정상을 맛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기운이 넘쳤다.

그래서 옹달샘을 보고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92m 금방 갈 수 있겠지.

그러나

산성산 옹달샘의 모습

처음엔 잘 못 본 줄 알았다.

그래서 지나갔다가 다시 보니 작게 물이 고여있는 것이 보였다.

아 저 물은 마실 수 없겠는데?

혹여나 나처럼 옹달샘을 구경하러 여기 오시는 분들.

조금 약소해서 못 보고 지나칠뻔한 옹달샘은 여기서 보고 그냥 만족하셔도 됩니다.

혹시나 다른 옹달샘이 있나 해서 앞에 난 길로 가다가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마주했다.

산성산에서 만난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

그냥 하산했다면 못 봤을 풍경이다.

호기심이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구나.

이 높은 산에서 누군가가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탑에, 지나가던 나그네가 하나 더 올리고, 또 쌓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살포시 하나를 더하고 돌아왔다.

재미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또 수행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다. 뭐 어때. 그냥 그렇게 흘러가면 되는 거지.


그리고 나는 예정된 시간에 맞게 하산했다.

총 소요시간은 2시간.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었더니 오늘도 1만 보를 거뜬히 채웠다.

역시 주말이라 많은 등산객들이 산성산 초입에 많이 있었다.

이렇게 건강하고 기운차게 주말을 보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을 힘 있게 했으니 오늘하루도 보람차게 보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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