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과 나눔을 위한 간식과 나를 챙기는 식사
요즘 들어서 센텀시티에 자주 간다.
벡스코에서 진행되는 박람회와 강연회에 연달아 참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연예인 홍석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늦지 않게 출석하기 위해서는 2시간 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10시 30분. 예정시간을 맞추기 위해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밥을 챙겨 먹고, 꽤나 쌀쌀해진 날씨에 맞추어 옷을 여러 겹 입었다.
겨울의 필수품 목도리까지 단단히 여며서 활기차게 나왔다.
아침의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조용하다.
떠들 수 있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조는 사람 반, 멍한 사람이 반이다.
나는 오늘의 기대감으로 눈이 초롱초롱한 채,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벡스코 1 전시장 104호.
늦지 않게 약속장소에 도착하면 기분이 좋다.
조그마한 성취감이 피어오른다.
내 이름에 서명을 하고 지시하는 자리에 앉으니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99.9의 여성분들이 가득한 강의실을 보게 되었다.
미성년자와 남성은 참석할 수없다는, 기대감이 솟는 맛있는 토크.
하지만 기대하면 실망하기 나름이다.
'오직'이라는 입담이 좋은 KBS 리포터분의 시선 끌기와 집중하기를 마친 후 무대 위에 오른 사람은 보험 관련 종사자였다.
나도 저축보험을 들었던 때가 있었다.
방카슈랑스. 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이다.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다.
10년 이상 납입을 하면 내가 받는 이자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 좋은 방법은 세금을 덜 내는 것이다.
10년이란 납입기간은 길다.
최저보증이율이 있어서 기준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보장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학생 때 가입을 해서 힘들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더니 10년 후 제법 쏠쏠한 이자가 들어와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왜 성년의 나이가 지난 여성들만 모집했는지 이해가 갔다.
돈 굴리기에 적성이 없는 사람들이 혹할만한 내용이다.
부자들은 종신보험에 관심이 많다.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
3.25의 기준금리가 오르지 않고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과, 자신의 노후, 혹은 아이들의 대학자금으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10년 후의 숫자로서의 보장내용.
그리고 관심은 없었지만 보험 가입하면 주어지는 건강보조식품.
1시간 30분의 보험 관련 종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2시가 다되어 간식이라고 카스텔라와 생수 하나씩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세상에 공짜란 존재하는가.
홍석천 님의 맛있는 대담을 기대하고 왔지만, 쏟아지는 보험관계자의 말에 심신이 지쳤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보험상품 판매가 끝이 났다.
카스텔라 하나와 생수 하나. 점심으로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만족할 때까지 먹는 타입인 나는 이 정도 양으로는 어림도 없다.
얌전히 가방에 넣고 사회자의 입담에 맞추어 호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아침부터 기다렸던 그가 도착했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 홍석천 님의 등장에 사람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의식의 흐름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각 잡힌 강의느낌은 아니었지만, 훅 빠져들게 만드는 집중도가 있었다.
99.9% 여성들의 400개가 넘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단 한 사람만을 향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와 생각보다 강렬한 부산 바닷바람에 춥다고 말하는 홍석천 님이 휴지를 요구하니 달려오는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
말 안 듣는 20대 입양한 조카의 이야기.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의 충고는 듣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아야 안다.
직접 겪어봐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겪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인생이란 나 스스로를 알게 되는 가정이고, 내가 나를 사랑해야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다.
연예인 최초로 본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솔직한 고백으로 의도치 않은 대중들의 미움을 받고 3년 간의 방송생활을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 후의 삶이 더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본인의 아픔을 희화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부르고 주목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을 눈으로 보았다.
보험영업으로 지쳤던 2시간이 사르르 녹는 2시간이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강연이 끝나고 질문시간이었다.
현실에 지쳐 힘들 때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강연자가 부럽다고 말했다. 자신감 회복법에 대해 묻는 질문자에게 노는 물을 바꿔라는 해답을 알려주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내가 나 자신을 챙겨야 오롯이 나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 안에서 제 삶을 살아간다.
엄청난 부자를 제외하고는 현실과 타협하며 어제와 같은 반복된 삶을 살아간다.
그래도 자신의 쉴 구석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바람을 쐬든, 불현듯 맛있는 식사를 챙겨주든.
맞는 말이다.
모두가 자신을 욕할 때, 한 껏 좌절하면서도 스스로를 돌보는 자만이 끝까지 버틸 수 있다.
마약 표적 수사로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당당히 경찰서로 자진 출두해서 검사받고 주변 사람들 괴롭히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비록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훌륭하다.
인생은 사고와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수습하면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에 따라 각자의 다른 삶이 결정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자신을 잘 알고, 잘 보듬어 왔기에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아닐까.
나도 나를 잘 알고 잘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한껏 들었다.
마지막 질문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진 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밤일을 하는 분인데, 그래서 남자들이 싫고, 같이 사는 친구가 예뻐서 관심이 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질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라는 진실한 충고가 나왔다.
남자든 여자든 만나보아야 내 사람을 찾지.
진정한 우문현답이었다.
하나의 질문에도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자신의 경험에 반추하여 현실적인 해답을 알려주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전의 보험영업시간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면, 오후의 맛있는 토크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끝이나 있었다.
종종 강연을 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일이 즐겁다.
쏟아지는 말들에 지칠 법도 하지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다 해내야 한다.
버스 타고 남포동으로 가서 엄마의 새로운 수업 친구들에게 줄 간식들을 구비한다.
이번에 새롭게 배우는 기초영어와 탁구교실.
2군데이기 때문에 사야 할 간식이 많았다.
주로 연령대가 높은 기초영어반에는 빼빼로데이를 겨냥한 부드러운 쿠키.
운동하는 사람은 영원히 젊다.
보다 젊은 층에 속하는 탁구교실에는 달다구리 한 초콜릿과 젤리, 사탕을 소분해서 포장했다.
하루종일 강의 듣고, 차를 타고, 간식을 이고 지고 돌아와 포장까지 마치니 드디어 허기가 밀려왔다.
카스텔라 한봉은 점심식사로는 한참 부족하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꼬마김밥과 소시지, 계란을 구워낸다.
소고기를 넣은 김치찌개까지 곁들이면 호화스러워진다.
오래 묵혀두었던 고추장아찌와 마늘장아찌는 자극적인 맛을 더해준다.
예쁜 접시에 담으니 꽤나 그럴듯한 식사처럼 보였다.
역시 담음새가 중요하다.
내가 나를 대접하니, 몸과 마음이 함께 든든해지는 기분이 든다.
좋은 날이다.
나를 더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하니 상대방이 보인다.
타인을 향한 배려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건강한 영양식같이 느껴진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은 같다.
하지만 그날의 기분, 온도와 습도, 구름의 위치와 하늘의 색깔은 나날이 다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소소한 기쁨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바쁜 하루였지만, 사소한 것에 웃음이 나고 든든한 오늘이 되었다.
어제보다 쌀쌀한 하루였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계절 가을이다.
당신에게도 어제보다 더 자신을 알아가는 오늘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