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미주의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누군가의 태도

한때는 지독한 애정의, 다음은 두려움, 이제는 그저 슬픈 존재

by 천둥벌거숭숭이

새해 첫날, 눈은 떴지만 일어나기 싫었던 새벽시간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

익숙한 이름.

전화받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싫어지게 만든 장본인.

그의 이름은 바로 아빠다.

체중계의 건전지가 다되었으니 바꿔달라는, 어제 엄마를 통해 전한 말인데도 이 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또 말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일들에, 본인이 해도 될 일을 전혀 하지 않고 남에게 미루는 태도에 한숨부터 나온다.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새해에 처음 걸려온 전화에 미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사이였다.


나는 지독한 탐미주의자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각한 것은 아빠가 참 잘생겼다는 것이다.

마른 체형임에도 탄탄한 근육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는 제 몸에 자신감이 가득했던지 집에서는 늘 속옷만 입고 있었다. 어릴 땐 그저 당연했던 것이, 많은 교육매체와 미디어 방송등을 통해 옳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의 복장이 바뀌게 되었다. 누군가의 강렬한 항의 때문이다(주동자는 땍땍거리는 첫째 딸).

옆으로 가면 쉽게 귀찮아하는 아빠에게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그의 기분에 있었다.

어린 존재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사람은 그렇게 쉽게 미움을 사버렸다.


귀여운 막내와 엄마가 알콩달콩하고 있으면 나는 외로웠다.

나도 저렇게 짝을 맞추어 즐겁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빠였지만, 쉬이 다가갈 수 없고 자주 곁에 있지도 않았다.

짙은 담배연기를 풍기며 보고 있던 tv채널을 마음껏 돌려버리는 권력, 늦은 밤에나 들어와 고성을 지르며 엄마를 공격하던 모습들이, 그의 존재를 미움에서 두려움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더 자라서는 생긴 대로 논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지만.


놀아주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과 즐거워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숨 막힐 듯 엄마를 구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용돈은 받지 않았지만, 명절에 받은 용돈을 야무지게 챙겨서 저축하는 아이였다.

갇힌 집에서만 살다가 자연스레 만난 또래의 친구들은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정말 낙엽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즐거웠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식사시간이 조금 지난 8시에 귀가한 어느 하루, 그의 분노가 나에게로 전해진다.

내가 나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집 앞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늦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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