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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Jul 10. 2024

아름다운 괴짜 고요

아스퍼거 증후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화 산책

기록적인 폭우가 연신 내리고 있다.

장마철에는 으레 태풍이 같이 찾아오곤 했는데,

올해는 이상스레 태풍 소식이 없다.

그러나 바람은 풍처럼 분다.

비 오는 날 외출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바람이 강력해서 조금 주춤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고요.

잠잠하고 조용한 상태.

스콜같이 강한 비가 오다가 금세 소강상태가 되었다.

지금 막 고요한 상태에서 눈에 띈 영화제목

사실 고요는 우리가 아는 고요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사람 이름이었다.

아르헨티나 사람 고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미술을 사랑하는 청년.

조금 지루할 수 있는 드라마적인 요소에 시각적인 다채로움을 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고요는 지속적인 사회관계 형성에 장애가 있고, 제한되고 정형화된 유형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늘 오르는 계단의 수가 같아야 하고, 미술관 가이드라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불안하면 인형을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물 안에서의 고요를 좋아해 수영장에 가면 늘 혼자 물속에 있곤 한다.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길 때만 그림을 그리는 고요.

비가 내리는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던 중 그림 같은 여인을 마주한다.

망가진 우산을 들고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여인은 화가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낮에 떠오른 해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빗방울의 방향이 그녀의 얼굴을 눈부시게 했다.

마치 빈센트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이 낮에 떠오른 듯한 기분이 든다.

눈을 뗄 수 없는 그녀는 그렇게 망가진 우산을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홀연 듯 사라진다.

더 놀라운 일은 그녀가 오늘부터 고요가 일하는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첫눈에 반한 고요는 그녀에게 눈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바쁜 그녀는 그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인사 한 번 하기 위해 그녀의 퇴근길을 쫓아가다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그곳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이 심화되어 그녀에게 나쁜 인상을 주게 된다.

누나와 함께 사는 고요는 일상의 세세한 이야기는 누나보다는 형에게 털어놓는 편이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가려 하다가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사회적 관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동생의 눈높이에 맞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형으로서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이해한 고요는 다음날 다행히 그녀와의 대화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그녀의 이해를 구한다.

그의 말과 행동은 직설적이다.

거짓 없는 그의 말과 행동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환경이 결코 좋지 못하다.

남편과 별거 중이지만 이혼은 하지 않은 상태고, 집을 나간 큰 아들과 아직은 어린 작은 아들을 보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설렘이라는 감정은 그녀를 뒤흔들고 만다.

고요의 데이트 신청에 직장동료와 나눈 대화에서 그녀의 그런 생각이 엿보인다.

"고요, 그 사람 조금 이상한 사람인 거 알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어."

그에게 끌리는 이유는 나를 향한 곧은 그의 시선과 진실함이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사랑은 쉽게 시작되지 않는다.

남들과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과 인간관계의 매끄럽지 못한 끝맺음이 두 사람 사이의 단단한 장애물이 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인정하는 마음이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을 만드는 법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에게 상처받은 고요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만히 있기만 하던 고요는 없어졌다.

물 안의 고요를 깨트린 고요는,

누구의 부름 없이 물속을 걸어 나와 그가 그리던 그녀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다음에 고요가 한 행동은 그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한층 더 성장한 고요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상치 않게 좋은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 영화 고요가 그러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곧 그 가정은 불행해지기 쉽다.

하지만 고요의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과음으로 엄마가 먼저 세상을 뜨고, 재혼한 아빠는 새엄마와 술에 취해 차를 타고 가다가 먼저 간 엄마와 같은 길을 가게 된다.

딸과 아들, 그리고 새엄마와 남겨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남자아이.

새엄마는 아빠를 보냈다는 죄책감과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아들을 낳고, 또 그 아들과 교감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며 술에 의지해 살다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남자를 만나 그의 집에 가서 살고 있다.

이복남매도 가족이다.

매일 밥 먹는 시간, 먹는 메뉴, 샤워하는 시간 등을 꼭 제시간에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주고, 술로 인해 가족들이 사고가 나는 것이 두려워 걱정하는 동생을 피해 몰래 술을 한 모금씩 먹는 누나의 행동. 그 모두가 사랑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준비는 되어있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 위해 숟가락을 주머니에 넉넉히 넣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고민된다면 볼만한 영화였다.

제대로 된 사람이 어디 있고, 정석적인 사람은 또 어디 있는가.

모두 부족한 점이 있으면, 또 잘하는 부분도 있고.

서로 맞춰가고 보듬어 가면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저 늘 아이처럼 보이는 동생을 지켜주고만 싶은 누나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처받으면서 더 성장하길 바라는 형의 마음.

힘든 현실 앞에 회피했지만, 어느새 자라 버린 아들의 손을 잡은 그 순간.

어머니도 또 성장하고 있었다.

고요는 혼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고요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러하다.

상처 입으면 몸은 스스로 흐르는 피를 응고하여 딱지를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 그 딱지는 어느새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난다.

비록 재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물리적 방법으로 상처를 낫기 위해 사람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혼자서도 하고, 같이도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고요는 아르헨티나 영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배경으로 나온다.

나라적 풍경보다는 미술 작품이 많이 나와 이 또한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이다.

예전에 배웠던 스페인어를 간간히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언어는 어릴 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mucho

많은, 굉장히, 풍족한, 대단히 등 한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많은 의미를 내포한 부사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쵸.

베사메 무쵸. 나를 꽉 안아줘.

나를 이해해줘, 나를 사랑해줘, 나를 꽉 안아줘.

이 영화에서 무쵸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

격정적인 표현이 많음에도 영화는 참 담백하게 느껴졌다.

사회적 관념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느린 동생을 위해 설명을 해주는 가족들의 모습.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솔직히 말하는 고요의 모습.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

모두가 자신에게 솔직했고, 상대방을 대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었기에 더 보기 좋았다.

2051년도 차기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아들과도 순수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고요는 어른이었다.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고요에게 오늘 또 배운다.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자.

곁에 있는 이와 끊임없이 대화하자.

고요는 혼자 있을 때 즐기자.

함께하는 즐거움을 더 크게 만들자.

처음 본 아르헨티나 영화가 즐거워서 더 좋은 오늘이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올 때 당신은 무얼 하고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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