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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천둥벌거숭숭이
Jul 15. 2024
웰메이드 국산 오컬트 영화 파묘
여운조차 남지 않는 깔끔하게 만들어진 영화산책
나는 유행에 편승하지 않는 타입이다.
영화 파묘가 나왔을 때.
개그맨 이수지 씨가 파묘에 나오는 배우 김고은 씨를 흉내 낼 때.
흙 퍼먹는 최민식 배우를 영상에서 만났을 때.
쇠말뚝을 소재로 쓴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호기심이 가기는 했지만,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비켜갔는데, 결국 보고 말았다.
이제야 만나게 된
영화
파묘
.
돈을 주고 그 사람의 능력을 사지만,
전문직 종사자에게 의지하는 상황에는 자연히 몸과 마음이 굽어지기 마련이다.
65점짜리 묫자리를 소개해줬던 지관이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당신 덕에 잘 살고 있다고 굽신거릴 뿐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이상적인 상황에서, 확신에 차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사람의 말은 지금이 힘든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
아이들과 아내가 꿈자리가 사납다는 말에 지관을 찾아가 파묘를 해본다.
관에 물이 차지도 않았고, 동물의 손을 타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관은 사나운 꿈의 이유를 바로 알아버렸다.
할머니의 틀니를 몰래 챙겨둔 손자로 인해 일어난 이야기.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한 집안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린 지관이었다.
같이 일하는 장의사와 쉬던 중에 누군가가 찾아온다.
바로 무당 화림과 그의 제자 봉길이.
돈냄새를 풍기며 찾아온 그들에게서 커다란 사건이 예고된다.
그냥 돈이 많은 사람들.
울음을 그치지 않는 갓난아이 때문에 화림을 찾은 것이다.
화림은 바로 아이에게서 귀취를 느끼고, 바로 이 집안에 얽힌 조상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파묘가 화림의 입에서 나온다.
그렇게 무당과 장의사와 지관이 한 팀이 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듯하지만 털어놓지 않는 부자 의뢰인과 찾은 묫자리가 스산하다.
산 정상에 위치하면서 그 주위에는
여우
가 돌아다니는 형세라니.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돈이 먼저니까.
무당의 춤사위와 굿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파묘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관이 나오고 의뢰인은 바로 화장해 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갑자기 내리는 비로 화장 일정이 잠시 연기되고, 작은 병원 영안실에 잠시 안치해 두기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돈을 받은 직원이 관에 든 물건이
탐이나
관을 열어버린 것이다.
험한 것이 나와버렸다.
그 험한 것을 찾기 위해 무당, 지관, 장의사가 이리저리 다닌다.
그렇게 부자 의뢰인의 조상이 일제강점기 제일가던 매국노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누구의 혼이 들어갔는지도 모를 빙의현상.
스쳐 지나갔던 작은 암자에서 들은 옛날이야기가 흥미롭다.
쇠말뚝을 가지고 다녔던 도굴꾼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하고자 했던 큰 일을 그려본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진출처 :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2시간 13분.
보통 영화가 1시간 30분이 지나가면 조금은 길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영화는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
실제로 매국노로 악명 높은 이완용의 묘도 수많은 도굴꾼들에 의해 파묘가 되었고, 그 묫자리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고 다녔다는 이야기.
정부에서 주최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산에 있는 쇠말뚝들은 측량을 위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해서 양산되고 마치 그럴듯하게 진실인 듯 전해진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랑하는 이들 곁에 남아 그들을 지켜봐 주고 위험한 순간에 도움을 줄까.
혹은 다른 세계로 가서 새 삶을 사는지.
소멸되어 버리는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자들이 남아서 추측하고 예상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을 수없는 이상한 현상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기적 같은 일들.
로또에 당첨되거나, 사고의 순간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을 때.
조상신이 보우하사. 외치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절에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파묘라 하면 무섭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미 묻은 사람을 다시 꺼내는 것이니까.
조선시대에도 가장 악독한 형벌이 부관참시였으니까.
죽은 자의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다시 목을 베는 것이 부관참시다.
1860년대 개화시기.
빗장을 잠그고 문을 열지 않는 흥선대원군을 자극하기 위해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던 유대상인 오페르트의 이야기는 국사 시간에도 나온다.
결론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파묘를 극도로 두려워한다.
결국 자신이 잘 살기 위해 파묘를 선택하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전문가를 부른다.
여기서 전문가는 무당과 장의사와 지관이다.
혹여 노여워할 조상신에게 인사를 하고, 꺼낸 관 안을 장의사가 정리하고, 그다음의 행보는 지관이 정한다.
한국적인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의문보다는 담백함이 느껴졌다.
극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소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바로 오니상과 은어, 그리고 참외이다.
일본의 귀신 오니상은 마치 산 사람처럼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고, 은어와 참외 중 하나를 골라 가져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추측을 한다.
갑자기 은어와 참외가 왜 나오는 거지.
참외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과일이고, 은어는 일본에서 흔히 먹는 생선이다.
우리나라에도 은어가 있기는 하지만, 잘 찾지 않는 생선이다.
어떤 사람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맞대결을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야기를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참외를 즐겨 먹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은어를 참 좋아했다고.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였지만, 파묘에 나오는 오니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측의 가신으로 전쟁이 끝나기 전 죽었기 때문에 계속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원적인 문제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영화를 보고 나서 후에 드는 감상은 오로지 관객만의 것이다.
상상력은 무궁무진하고, 자기 이야기를 더 그럴듯하게 포장해 주는 것은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예술가적 혜택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오면 관련 사건들을 한 번씩 더 찾아보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박혔던 말뚝을 찾으러 다닌 사람들 이야기.
2023.08.17. 문화일보 [70년前 다케시마 적힌 말뚝 뽑고 독도 표지석 세워] 기사 발췌.
1953년 휴전 직후 10월 15일 한국 산악회 회원들이 직접 독도에 가서 일제가 박아놓은 다케시마라고 적힌 말
뚝을 뽑고 독도라는 표지석을 심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의 뿌듯함.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도 바로 잡으려던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나오는 것이 좋다.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영화들은 분명 보는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용두사미로 아쉬움을 주는 경우도 있고, 많은 각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영화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역사이니까.
내가 본 파묘라는 영화는 그냥 깔끔했다.
결국 나라를 팔아버린 매국노는 처절한 끝을 맞이하였다. 라거나,
일제는 대한민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라거나,
도굴꾼은 사실 무덤을 파서 이익을 얻으려던 것이 아니라 쇠말뚝을 뽑는 일을 하던 것이다.라는 확답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남겼다.
갓난아기는 죄가 있나?
부모의 죄가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정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는 믿음.
그런
생각들을
담아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는.
그래서 파묘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배우들의 연기가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무당역을 맡은 김고은 배우의 연기가 과하지 않아서 좋았고, 무엇보다 위험한 일에도 동료를 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보기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사람들의 행동에 이해가 갔다.
대살굿 장면과 휘파람 부는 장면은 정말 소름 끼치도록 무당 같았다.
깔끔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과하지 않으면서 흡입력 있는 모습이 좋았다.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화제성, 재미, 연기력. 모두를 아우르는 꽤 괜찮은 영화 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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