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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Jul 04. 2024

Maid와 조용한 희망의 괴리

꽤 볼만한 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영원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탈출의 명대사다.

조용한 희망이라니.

내가 볼 수밖에 없는 제목의 드라마였다.

원제 메이드.

가정부 혹은 가사도우미로 의역되는 메이드.

어떤 이야기일까.

한 소녀와 손을 잡은 채 통로를 지나는 여인의 이야기.


사회복지사와 아이를 안은 한 여성의 대화로 시작된다.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에게 사회복지사는 약을 하냐고 묻는다.

가정폭력을 당했는데 눈에 보이는 증거를 찾는다.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술에 취해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남편이 던진 유리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이 깨졌다.

세잘배기 아이 머리카락 사이에 유리파편이 조각조각 발견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겁에 질린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없었다.

폭력에 대한 정의는 모호했다.

직접적인 위해만이 폭력인가.

어쨌든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집을 나온 상태이므로 긴급 여성을 구호하는 숙소에 들어가게 된다.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폰을 실내에서 반납하고 숙소로 들어간다.

아이를 위한 옷을 건네주는 관리인에게도 경계심이 가득하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호 혜택을 받으려면 필요한 서류가 굉장히 많다.

아이와 지낼 거처와 직업.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한 변호사에게 통고를 받는다.

남편이 아이를 강제로 데려간 데에 대해서 고소를 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간 법원에서 그녀는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그렇게 빼앗기고 만다.

그럼에도 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본인이 할 일을 찾았다.

대학교를 가지 않고 집안 살림과 아이를 돌보았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메이드 밖에 없었다.

힘든 현실이지만 바로 앞에 주어진 엉망인 현실을 정리하고 바로잡는 일을 한다.

다행히 그녀에게 호감이 있던 여유로운 이혼남이 도움을 주지만 부담스럽기만 하다.

안정적인 직업이 생기니 국가에서 지급하는 임시 숙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임시숙소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짙어지는 곰팡이 향에 아이가 병들어가고 있었다.

어쩔 수없이 아버지에게 의탁했지만, 과거의 기억이 그녀를 붙잡는다.

술에 취해 엄마를 괴롭히던 아빠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린다.

결국 아빠를 피해 엄마에게로 간다.

엄마는 만성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자신의 환상 안에 가둬버린 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조증으로 늘 과하게 밝아 보이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만 주저리 주저리 하는 사람이다.

지금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사기꾼 같지만 엄마는 듣지 않는다.

겨우 엄마가 사는 트레일러 안에서 살 수 있었지만, 갑자기 엄마가 그 사기꾼 같은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신혼생활을 해야 하니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그녀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 남자가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다.

덕분에 아이는 좋은 어린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제 몸 뉘일 잠자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에 사건이 자꾸 일어난다.

엄마의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때 남편 숀이 그녀에게로 찾아온다.

호의적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을 보고 경계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에는 바로 앞의 문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옳지 않은 선택에 의해 나쁜 결과들만 발생한다.

늘 노력하는데 왜 이렇게 나쁜 결과만 만나는 걸까.


책이 원작인 드라마라 내용이 탄탄하고 모든 글에 개연성이 있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가정의 아픔이 다양하게 그려졌다.

나도 몰랐던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순간.

왜 나는 아빠를 싫어했던 것일까.

실수로 갇힌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어릴 때의 기억이 솟아났다.

폭력적인 아빠를 피해 찬장에 숨었던 어렸던 나 자신.

엄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집을 나왔던 것일까.

나는 6살 때부터 엄마를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증인 엄마를 내버려 둔 아빠를 원망했었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있을 때, 어릴 때의 상황과 같다고 몸이 느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한 아빠를 피해 엄마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던 일.

사회복지사나 나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당했던 가정폭력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일까지 겹쳐져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다 자라고 아이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찾아와 나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나는 아빠에게 전혀 신뢰감이 없다.

단 한 번도 나의 편이 되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숀을 대변하는 사람.

나를 위한다고 하지만, 나를 지켜낼 생각이 없는 사람.

진실을 마주하지도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려면 내가 단단해야 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비록 돈에 급한 나머지 일하는 회사의 고객을 빼내어 따로 현금을 착복한 일, 자기가 일하고 못 받은 돈을 받기 위해 친구와 그 집에 찾아와 복수를 꿈꾼 일.

매사에 솔직하려고 노력했지만, 주변 상황과 사람들에 휩쓸리는 것 또한 그녀의 선택이었다.

누구를 원망할 겨를이 있으랴.

수습하기에도 시간은 빠듯하다.

그래도 나에게 손 내미는 다정한 사람은 존재했다.

아이와 맨몸으로 나왔을 때 받아주었던 긴급 구조 센터 사람들, 일에 대한 충분한 대가는 치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일을 소개해 준 수집광 임산부, 가정폭력피해자로 당황하고 힘들 때 도움을 준 대니얼, 그리고 내가 부탁이 있을 때마다 들어준 엄마.

양육권 분쟁에 있지만 엄마의 일을 도와준 숀도 무시하지 못한다.

사랑해서 함께 했지만, 결국 그와 그리는 미래에 행복한 나와 매디(아이)는 없었다.

기대고 싶은 마음과 무서운 마음, 감정의 폭풍우가 몰아쳐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집을 탈출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10번 중에 7번이라고 한다.

굉장히 흔하다.

곧 괜찮아지겠지, 술을 안 먹으면 괜찮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한 순간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과 같다.

어둡고 좁은 동굴 안에 갇혀 있을 때 그녀의 방 문을 두드린 것은 그녀의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서로에게 미움이 가득한 레지나라는 한 여성의 두드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 발로 집을 나왔고 낯설지 않은 길을 우뚝 서서 걸어갈 뿐이다.


글이 짜임새가 있었다.

누군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면 특히나 더 현실성이 느껴진다.

꼭 맞아서 멍이 들거나 피가 나야 가정폭력이 아니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위협적인 모든 행위가 가정폭력이다.

가정이라 함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쉼터이다.

아무리 바깥에서의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더라도 반드시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란 바로 그런 곳이다.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곳.

집이 안전하지 않으면 사람이 불안정해진다.

가정이 행복한 이유는 하나지만 불행한 이유는 각 가정의 수만큼 다양하다.

다양한 가정의 모습이 드라마 안에 담겨 있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어른도 이혼을 한다.

약에 취해 가정을 등한시한 엄마는 계부의 폭력에 노출된 자신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렇게 9살부터 음주를 시작한 아이는 다 자라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자신의 가정에 위협을 주는 어른이 되었다.

떠나는 여자를 잡기 위해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시작한다.

내가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가 싫어하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녀가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좋겠고 그녀가 세상을 배우기 위해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와중에도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싫어했는데, 나도 내가 싫어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이 바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순간.

바로 옆에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면 3살 어린아이를 데리고 술집에 데리고 가려했던 자신을 마주한 순간.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하는 선택을 내린다.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고 있음에도 우뚝 서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는 그녀에게 빛이 난다.

내 아이를 지켜줄 사람이 빛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좋은 결말을 본 나도 참 다행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본 드라마였다.

특히 3화까지 다 보았을 때는 여기까지만 봐야지 했다.

가정폭력으로의 탈출과 법원출석.

어렵기만 한 현실 속에서 청소라는 특성을 찾아 직장을 구하고 숙소까지 얻었을 때.

일시적인 완성에만 만족할 것인가.

다시 갈등이 시작되려고 할 때. 그다음을 보기 두려워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를 투영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힘들면 같이 힘들고, 웃으면 같이 웃는다.

그러면서도 다음이 또 궁금해서 그다음 날 다시 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 정말 무서운 것이다.

사람을 조정하는 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이, 나의 배려인지, 폭력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경우가 생긴다.

옆에 있을 때는 모르는데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분명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 가만히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러한 상황이 있어서 보는 이로써 참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가 아니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괜찮다고, 너는 너 자신으로 충분히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없으면 너는 못 사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만 말해줄 뿐이다.

옆에서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고 말해줘도 안 들으니까 보는 사람은 속이 답답하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다면 내가 하는 행동조차 폭력이 되는 거니까.

그저 기다려줄 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구호 시설의 사람이 기다리는 역할이었다.

폭력적인 사람으로부터 도망칠 숙소와 식사, 아픔과 혼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주고, 쇼핑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내가 무슨 색을 좋아했는지, 어떤 옷을, 어떤 질감을 선호했는지도 잊은 그 순간.

기다림이 가장 큰 약이었다.

특히 비슷한 경우의 가정폭력 피해자였기에 피해자의 마음을 더 잘 공감해 주고 기다려 줄 수 있었던 이야기의 개연성이 보는 사람으로부터 거부감 없이 보였다.

모든 이야기가 폭풍처럼 몰아쳤지만 부드럽게 흘러갔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부유한 집에서의 일이다.

주어진 시간에 청소를 깨끗하게 했지만, 화장실 타일 사이의 물때를 빼는 데에는 냄새가 많이 나는 일이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따로 시간을 내어 청소를 하겠다고 말하니 집주인은 돈을 더 줘야 하냐고 묻는다.

캐시미어 셔츠 하나에 1400달러(약 193만 원) 주고 사면서 청소비 1~2만 원에 인색하게 구는 집주인이다.

그녀는 그녀의 만족감을 위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힘들 현실에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깨끗이 해낸다.

그녀의 이런 똑 부러진 성격이 그녀가 진취적인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데 도움을 준 듯하다.

비록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휘둘리는 우유부단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자체가 선하다면 결국 좋은 길로 가게 된다고 작자는 말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한 편의 책을 다 읽은 듯하다.

다음에는 책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아이를 주변 모든 이들이 사랑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들이 끝까지 나와서 좋았다.

내가 아무리 힘들지언정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어른에게는 이기적으로 굴 수는 있어도 아이에게는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방어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무방비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다 컸는데도 어릴 때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마음이 성장하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어루만져줘야 한다.

내가 온전하게 건강할 때라야 바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내가 책임 질 수도 없다.

때론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수도 있다.

기다림.

상대를 믿으니까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세상.

조용한 희망.

마음이 외로운 사람이 보면 좋을 드라마.

10편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는 흡입력 있는 드라마다.

작가의 필력과 감독의 연출.

그리고 작중 엄마와 주인공이 진짜 모녀사이라는 것은 재밌는 요소이다.

통제 안 되는 엄마 역할을 했던 진짜 엄마는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참 부러웠다.

분명 너는 드라마 안에서도 밖에서도 곧게 자라 자신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그렇게 또 나를 투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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