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것

퇴사자 생활 지침서

by 변준수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하면서 당장 해야 될 일 빼고 모든 일을 미뤘다. 역시 건강이 최우선이다. 쉬면서 책도 읽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한채 뒹굴거리기도 했다. 3개월 만에 '그냥' 쉬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다 보니 돈 쓸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통장 잔고 앞자리가 바뀌었다. 다른 통장에 따로 모아둔 돈이 있지만 앞자리가 바뀌자 위기감이 느껴졌다.


2주 전, 지인을 만나 퇴사 후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 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길을 알아보고 있었던 터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퇴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포카 : "퇴사할 때 뭐가 제일 중요할까요?"

지인 : "퇴사 이후 삶은 치열한 삶의 연속이야. 역시 돈이 제일 필요해"


퇴사에 대한 확신, 회사에 대한 고민, 미래 계획 등 거창한 것을 생각했다가 '돈'이라는 대답을 듣고서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돈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을 안 하고 회사를 나왔기 때문이다. 돈에 좀 더 신경 썼더라면 회사에서 실업급여를 안 주기 위해 편법을 쓴 것도 죽자살자 따졌을 거다. 하지만 회사에 단 하루도 더 있기 싫어서 사표를 쓰고 나왔다.


당장 쓸 수 있는 돈과 묶인 돈을 구별해야 한다 / 이하 구글 이미지


쓸 돈이 얼마나 있나요?


퇴사를 하고 나면 한동안 모아둔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누가 자신에게 생활비를 주는 게 아니라면 모아둔 돈에서 알뜰살뜰 써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퇴사자들은 돈 문제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돈 떨어지면 재취업하지 뭐"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퇴사하면서 쓸 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퇴사 이후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쉴지, 한 달에 어느 정도 돈을 쓸지, 고정된 비용은 무엇인지, 여행 갈 때 어느 정도 돈을 쓸 건지 등등 고려할게 많다. 돈이 넘치는 퇴사자가 아니라면 어디선가 구멍이 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를 나눴던 지인은 한 달에 쓸 돈을 정하고 1년에서 2년 정도 돈을 따로 마련해뒀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지난 3개월간 지출 내역을 알아봤다.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는 확실히 씀씀이가 줄었다. 건강 때문에 술도 끊었고 웬만한 식사는 집에서 처리하고 있다. 커피 값이 들긴 하지만 최근에는 허리가 아파 카페에 가기보다 집에서 작업을 하는 편이다. 한 달에 약 100만 원 정도 쓴다고 가정하니 돈이 남을 때가 많았다. 남은 돈을 모아 여행 경비에 보탤 생각이다.



돈 문제가 있는 사람인데 퇴사해도 될까요?


한 달 전 퇴사 이야기로 글을 쓰고 있는 걸 들은 후배 한 명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돈이 걱정되긴 한데 회사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퇴사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이에 "우선 퇴사는 네가 결정하는 거고 지금 보니까 어떻게든 퇴사를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 같은데 심각하게 고민해봐.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라고 답했다.


사실 나는 퇴사할 때 1년 정도 쓸 돈을 따로 준비했다. 병원비, 운동, 여행 비용도 포함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당장에 갚아야 할 대출이 있었고 본가에서 나와 자취를 하고 있어 달마다 내야 하는 관리비 등이 있었다. 애인이 있어서 데이트 비용도 꽤 들어갔다. 난 그 친구에게 이직을 추천했다.


모든 사람이 퇴사를 고민할 수는 있지만 그 모든 선택이 퇴사로 흐를 필요는 없다. 퇴사가 아니어도 이직이라는 답안지가 있다. 특히 정기적으로 갚아야 할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임금으로 들어오는 금액이 있어야 한다. 월급 없이 한 두 달, 길게는 세 달에서 여섯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실업급여도 받고 퇴직금도 나오니 그럭저럭 생활할만하다. 하지만 중장기 계획이 없다면 그 이후부터 낭패를 보기 쉽다.


퇴사는 판타지가 아니라 생활이다. 생활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수준의 돈이다. 퇴사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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