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 생활 지침서
퇴사한 지 4개월째가 됐다. 요새는 마음가짐을 달리해서 그런지 부담감이 줄었다. 몸 아프고 난 다음 정신 차린 모양이다. 보는 눈이 달라지니 하고 싶은 게 늘었다. 하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고민이다. 다시 고민이 생겼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퇴사 후 고민은 늘 따라다녔다. 그게 뭐든지.
이전 글들을 통해 돈, 재취업, 건강, 각종 보험 등에 대해 다뤘다. 이 모든 게 하나같이 퇴사자에겐 짐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짐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일할 때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퇴사한 지 3개월이 지나면 그동안 쉬면서 보이지 않았던 게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고민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매한 일이 많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기도 한다. 소위 '답이 없는 일'에 힘을 쏟다 보면 정신이 더 아득히 멀어진다.
당장 시작할 일?
막연하게 불안한 느낌에 쫓겨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이 제대로 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해진다. 여기서 일은 재취업부터 취미로 무언가를 하거나 여행 가는 것 등 퇴사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말한다. 퇴사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불안해하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 가지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타의에 의해,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하게 되는 고민이다.
전자의 경우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차근차근 준비해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취업에 관한 문제, 휴식에 대한 문제, 생활에 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재취업이나 이직, 생활비는 퇴사자가 마음먹었다고 바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급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긴 하지만 정기적인 급여를 생각한다면 취업문을 두드려야 한다. 준비가 필요한 일이지만 꼭 필요하니 시작해야 한다. 주변의 시선에 의한 불안감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퇴사자 스스로 '다시 일해야겠구나'라고 공감하고 있기에 시작하는 게 낫다. 쉬는 것도 마찬가지다. 좀 더 쉬어야겠다고 느꼈고 특별히 걸림돌이 없다면 쉴 수 있을 때 완벽하게 쉬는 것도 중요하다.
내게 최적화된 템포 찾기
반면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문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취업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요새 취업 힘들다던데?"
"잠깐 쉴 때 여행 가봐. 회사 다니면 가기 힘들잖아"
"재취업하려면 뭐라도 배워두는 게 좋아. 자격증 하나라도 쉴 때 공부해봐"
퇴사자에게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적어봤다. 저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이해되기도 한다. 오지라퍼의 걱정과 달리 퇴사자는 이미 위 사항들을 고려하고 퇴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생각해본 사항이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면 불안해질 수 있다. 퇴사하고 다음 직장을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타인이 유발한 불안감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면 내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면 어떻게 하야하나?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봤다. 주변 사람들 중 절반은 나의 재취업을 걱정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 가운데 반 정도는 "지 알아서 하겠지"라며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거나 퇴사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게 관심이 없다. 내가 아는 만큼 나에 대해, 내 상황에 관해 알지 못한다. 이해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판단한다고 객관적인 분석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무계획적이고 무사태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과한 조언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퇴사도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재취업, 여행, 휴식도 충분히, 그리고 계획적으로 하는 게 좋다. 모든 일을 계획대로 할 수는 없더라도 방향을 설정하고 자신의 템포대로 하길 바란다. 3개월동안 무작정 달려오다가 몸이 망가져 본의 아니게 쉬게 됐다. '쉴 때 제대로 쉬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졌다. 휴식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대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편한 호흡에 맞춰가고 있다.
4개월쯤 이 글을 쓴 것은 6개월이 퇴사자에게 분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남은 두 달 동안 제대로 쉬거나 하반기 취업을 위해 서서히 시동을 걸 때가 왔다. 아! 이 글도 오지랖으로 보인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하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