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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09. 2023

셰익스피어가 주제 파악 좀 하라 했다 (2)

걸음마를 간신히 떼고 타국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논하기까지. 

한숨 돌렸다. 그러나 또 다른 쉽지 않은 과제에 직면했다. 낙제를 면하려면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한 리포트를 제대로 작성해야 했다. 그래도 자료나 타인의 도움을 일절 받을 수 없는 시험의 형식보다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본 후 내 나름의 해석을 담아 서툴게나마 영어 작문을 했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영작 첨삭을 받아서 다듬은 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예전 같으면 홀로 만족하며 그냥 제출했겠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많이 겸손해진 때였다. 가까스로 얻은 재도전의 기회이니 만큼 신중하고 싶었다. 


교내 유학생을 돕는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찾던 중, 우연찮게 어머니가 그 무렵에 알게 되신 지인분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처럼 미국에 유학을 와서, 아이비리그 교수로 재직하다 지금은 한국 모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니 물론 세세한 첨삭을 부탁드리기엔 너무나도 바쁜 분이지만, 내가 쓴 리포트를 보여드리고 뭐든 조언을 부탁드려 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나에게야 물론 성경보다 길었지만, 영어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어쩌면 호의로 한 번쯤 읽어볼 수도 있는 소소한 분량의 글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마디만 해주셔도 과분한 도움이라고 알리며 부탁을 드렸다. 




후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별생각 없이 리포트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아프셨다고 한다. 노력의 흔적은 역력하지만 미국인 교수가 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적은 것이 안타까우셨다고.


지금 그때의 그 분과 더 가까운 나이가 된 내가 당시 그 심정을 헤아려 보자면, 나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작문 실력으로 완성한 리포트를 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연륜 지긋한 분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에서야 패기와 열정이 있는 학생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어 수준에 대한 위기감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니 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조언도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춰졌을 때나 효력이 있는 것이니. 


자신이 처음 유학길에 올랐던 시절이 겹쳐 보여 적당히 지나칠 수가 없다시며 귀한 시간을 들여 교정을 도와주신 그분께 아직도 감사하다. 그 한 번의 도움으로 내 영어 실력이 나아지거나 리포트를 더 잘 쓰게 된 건 아니지만, 통감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주제 파악도 못하고 감히 영어를 얼마나 우습게 여긴 건지. 




영어로 논리적인 긴 글을 쓸 때엔 틀린 곳 없이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잘 쓰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를 사용하여 작문을 할 때와는 문장과 문단의 구조,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 완전히 다르게 잡혀야 한다. 언어를 이용한 사고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쓰듯 쓰게 되면, 그게 아무리 뛰어난 내용이라 해도 영어 사용자들을 제대로 이해시킬 수가 없다. 전달되지 못하는 글은 쓸모가 없다.


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어로 한국에서 말하듯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기거나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던 나의 억양과 발음도 난관이었지만, 문장을 충분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만들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문제였다. 


언어는 기술적인 측면은 물론이요 문화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문화를 이해해야 사고의 흐름도 이해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무엇인지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로 인해 희로애락에 서로가 공감하지 못하여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잦았다.  




영문학 수업 이후로 나는 중요한 영작을 하고 나서는 반드시 주변에 첨삭을 부탁했다. 때로는 심하게 혼나거나 무시당하기도 해서 서글펐지만, 내가 쓴 글이 어떻게 소통가능한 형태로 바뀌는지를 반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많이 늘었다. 


영작 첨삭을 부탁하는 횟수가 적어지면서, 영어로 한 번에 세 문장 정도를 이야기로 묶어 자연스레 말로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수업이나 미팅의 절반 정도를 알아듣게 되면서, 그리고 미국식 유머에 간간히 웃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미국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타국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논해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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