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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11. 2023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다.

자신만의 무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뉴욕에서의 학부 시절, 여느 때와 같은 디자인 전공 수업 시간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제로야, 지금 교수님이 내 과제물 보고 뭐라고 하신 거야?" 


J였다. 뉴욕에서는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였지만, 한국에서 이미 학위를 받고 실무경험을 하다가 유학을 결심한 사람이었다. 나이 차이도 꽤 나고 뭐든 노련한 느낌이라 늘 선배같이 느껴졌다.  


이미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도 하다가 뉴욕 미대로 온 한국 유학생들은 상당히 많았다. 오히려 한국인들 중 내 또래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관련 전공이었을 경우엔 말할 것도 없고, 아니었어도 대학을 졸업해 본 경험, 사회생활을 해 본 경험으로 그들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나를 한참 앞서 있었다. 


그런 중에서도 J의 작업은 유독 특출 나게 좋았다. 어떻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에 그런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한국인들이 다수 함께하는 학업 환경에 놓이는 것은, 내게 그다지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영어 실력을 키우고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갈수록 오히려 뼈저리게 깨닫게 되던 것은 산 넘어 산일뿐 인 현실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성장기를 마치고 성년이 되기까지, 언어훈련의 황금기인 약 20년의 세월을 따라잡아야 학업이든 취업이든 미국인들과 비슷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니 말이다. 


이렇게 미국인의 과거만 따라잡을래도 까마득한데, 학교에는 이미 나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앞서 있는 한국인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그들의 수준 높은 작업물, 그리고 학업을 해나가는 노련한 자세와 나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외치며 밤마다 뉴욕 거리를 방황하는 매일을 보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 싶다. 뉴욕의 낭만을 몸에 걸친 채 호기롭게 웃으며 지냈지만, 단 하나도 버겁지 않은 것이 없었고 한 순간도 편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뭐랄까,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아무도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지진 못한다. 바꿔 말해 누구나 남에게 없는 무기가 한 둘 쯤 있다. 나에게는 큰 의미 없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갈망하지만 손에 넣지 못하는 불로초 같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영어는 대체로 미국 또는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살기 시작한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한다. 원어민만큼의 능숙함이 목표라면, 별다른 조기 교육이 없었을 시 나 같은 스무 살 유학도 탈락이고, 그 이후에 시작한다면 개개인의 언어적 감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계가 더욱 명확하다. 


애초에 외국어라는 건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현지인처럼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경우 나보다 많은 나이에 유학을 온 한국인보다는 나의 언어적 감각과 적응력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더 잘나거나 유별나게 노력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미국에 온 나이가 몇 살 더 어려서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압도적인 질의 작품을 수업 시간마다 선보이던 J 역시, 영어가 발목을 잡곤 했다. 작업이 워낙 좋으니 교수도 다른 학생들도 J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질문도 많았다. 하지만 J는 수업 시간에 교수의 피드백을 알아듣는 것도 힘들어했고, 소통은 매우 기본적인 선에서 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수업 중 J의 소통을 돕는 통역을 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예전 광고 수업 시간엔 교수가 내게 통역을 붙여주었었는데. 




J는 졸업 후 지금까지도 유난히 하얀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웃음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몇몇 잘하는 한국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과제물과 관련한 정보를 물으면 숨기고 안 가르쳐주는 경우도 많았는데, J는 누구에게든 거리낌 없이 자세하게 알려주곤 했다.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편하게 질문할 수 있는 유능한 선배 같은 동기가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활달하고 마음 착한 J였지만, 구직을 걱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안타깝게도 눈웃음도 옅어졌다. 작업과 성격, 됨됨이로만 따지자면 J가 미국에서 가지 못할 회사는 없어야 했다. J도 미국의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자니, 서툰 영어가 본격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결국 J는 미국에서 커리어 경험을 쌓는 계획은 접고, 미국 유학의 경험과 포트폴리오, 학위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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