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 간호부문
writer. 최주연 photo. 황필주(Studio79)
간호사는 흔히 ‘백의(白衣)의 천사’라고 불린다.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그러나 간호사는 충만한 인류애를 발휘하며 환자 곁을 지키는 휴머니스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탁월함을 바탕으로 환자 및 보호자와 상호작용하며 치료 여정에 연결 고리를 만들고 작동시키는 전문가여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부문에는 또 하나의 사명이 있다. 국가중앙병원 간호부문으로서 우리나라와 세계 간호의 발전을 이끌어갈 책임이다.
간호 현장은 언제나 긴박하게 돌아간다. 환자 안전을 책임지며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치해야 하는 것은 기본, 행정 업무도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하지만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들은 매 순간 최상의 치료에 최선의 돌봄을 더하기 위해 힘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호부서라는 자부심, 간호부문을 후원하는 수많은 이들의 애정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다면 간호사에게는 ‘나이팅게일 선서’가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부문은 나이팅게일 선서의 내용 중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를 실천하는 데 특히 힘썼다. 국가중앙병원으로서 공공성에 기반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며 대한민국 간호계를 선도할 책임 덕분이다. 그 책임 그대로 간호부문은 1906년 3명의 간호사로 시작한 이래 1978년 간호과에서 간호부로, 2014년 간호본부에서 간호부문으로 승격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변화를 꾀했다. 1978년 서울대학교병원 특수법인화 직후부터 개설한 다양한 전문간호 교육과정(중환자, 감염관리, 상처관리, 응급간호 과정 등), 팀 간호 도입(1978년), 장기이식진료실 간호사 배치(1994년), 프리셉터(Preceptor) 제도 도입(1996년), 교육전담 간호사 운영(2009년), 환자 안전관리 시스템 도입(2019년) 등 체계적・전문적 간호 시스템 정착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이 모든 노력은 서울대학교병원은 물론 전국 곳곳의 간호현장으로 전파돼, 환자 중심 간호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경이 간호본부장은 그 동력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호부서’라는 자부심을 꼽았다.
“50여 개의 일반입원 병동, 5개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10개의 중환자실부터 본원 수술실 31개와 소아수술실 10개 그리고 성인과 소아 응급실에 이르기까지 3천여 명 간호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간호부문의 역할은 서울대학교병원 내에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대표’라는 자부심을 이어가려면, 국내 간호 전체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전파하고 정책 제안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부문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수하고 훌륭한 인재들과 함께 간호계의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과학적 지식과 냉철한 판단력을 토대로 한 전문간호, 손끝의 온기가 느껴지는 전인간호, 국내 간호계를 이끄는 리딩간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이경이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본부장
이경이 간호본부장이 강조한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부문의 역할 중 핵심은 인재 육성과 간호 역량 강화다. 1979년 중환자 간호관리과정을 개설한 것에 이어 상처장루실금 간호과정, 감염 관리과정, 응급 중증환자 관리과정, 병동 중환자 간호과정 등 다양한 전문 간호관리과정을 개발해 간호사 전문성 향상을 이끈 것이다.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들은 물론 국내 타 병원 간호사들에게도 전문 간호과정 수련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간호 역량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교육전담 간호사제도를 도입해, 최근 신입간호사를 1년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관리하는 SNUH NRP (Nurse Residency Program) 체계로 업그레이드 하는 등 신입간호사 교육체계를 강화했다. 신입간호사 입문교육(1:1 프리셉터십)은 숙련된 간호사인 프리셉터가 병동에서 신입간호사를 일대일로 현장지도하고 관리하는 제도로 신입간호사의 빠른 적응을 도와왔다. 2009년부터 임상 현장에서 교육을 전담하는 현장교육전담 간호사제도도 도입했다. 프리셉터 기간 종료 후 신입간호사가 겪을 수 있는 ‘현실 충격’을 완화하고 맞춤형 현장 방문교육 및 멘토링을 시행하기 위해서다.
“신입간호사는 8~10주간의 프리셉터십 이후 독립하게 됩니다. 환자 상태 파악 및 의사소통, 의사결정 등을 도맡아야 하니, 경험이 적은 신입간호사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이죠. 현장교육전담 간호사제도는 이런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자원(自願)을 통해 선발된 현장교육전담 간호사들이 이론과 실무 교육, 멘토링 등을 맡아 신입간호사들의 업무 적응력을 한층 높이고 있습니다.
2009년 제도 도입 후 간호부문은 교육전담 간호사와 함께 예비교육의 시뮬레이션 교육 도입, 시뮬레이션 시나리오 책자 및 강사용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일 등에 더해 신입간호사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정책 연구 등에도 매진했다. 이러한 노력은 2019년 보건복지부의 ‘교육전담 간호사 지원사업’의 마중물이 되어, 전국 대학병원과 공공의료기관으로 확산됐다. 이어 2022년부터는 민간병원에서도 교육전담 간호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신입간호사 적응도 향상 및 사직률 감소, 프리셉터 만족도 상승 등의 성과를 낸 결과다.
교육전담 간호사들은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과 동시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그 필요성을 확실히 증명했다. 기존 교육 프로그램에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프로그램을 더해, 한 번에 40~50명에 이르는 예비 간호인력 교육에 힘을 보탠 것이다. 이경이 간호본부장은 “운영 면에서나 프로그램 면에서나 국내 간호계의 리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라고 말한다.
간호사의 전문성 향상은 결국 환자 치료와 돌봄을 향한다. 전통적으로 의사는 치료(Cure)에, 간호사는 돌봄(Care)에 더 중점을 두는 전문가로 여겨져 왔지만 치료와 돌봄은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가치다. 입원 전부터 퇴원 후 관리까지, 치료 여정의 최접점에 있는 간호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다만 상급종합병원 특히 중증 질환을 가진 환자가 주로 찾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치료에 무게 중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호부문은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에 머무르는 대신, 돌봄 영역을 넓히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왔다.
예를 들어 약제부와 공동으로 도입한 약품자동불출시스템은 각 병동에서 비품약을 저장해 두었다가 응급 처방 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응급 처방약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투약을 도왔다. 혈압과 맥박 측정 시 그 수치를 자동으로 전자의무기록(EMR)에 반영하는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PDA로 환자 팔찌에 있는 RFID 인식표와 약 포장지에 있는 QR코드 일치 여부를 확인한 후 투약하는 환자 확인 시스템도 시행 중이다.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 상황 대응을 위한 프라임 팀(예비간호팀) 배치, 상호 존중으로 조성하는 긍정적인 조직문화, 공정성에 기반한 인사 관리 등 업무 여건 개선 노력 역시 돌봄 영역 확대로 수렴한다. 반복되는 업무를 시스템으로 대체해 환자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간호 업무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 간호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덕분이다. 이경이 간호본부장은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훌륭한 자질을 갖춘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들이기에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3천여 명의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들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간호의 기본 철학인 돌봄의 가치를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만으로 치료와 돌봄을 한 번에 실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저희 간호부문에서 현장 간호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반복적인 간접 간호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호 작용과 공감으로 치료 여정에 함께 하는 저희를 지지해 주신다면, 인간 중심의 간호, 국민 건강과 간호 질 향상을 위한 리딩간호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