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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빵 Oct 06. 2024

은혜한복

_ 뾰로통


엄마의 첫 경영은 실패였지만, 

딸을 향한 사랑은 성공이었다. 


생활고에 찌들었던 우리는 형편상 학원을 쉽게 다니기 어려웠다. 

그래서 3학년쯤 처음으로 학원을 다닐 수 있었는데, 바로 길 건너 대형 미술학원이었다. 


그곳은 4층과 옥상층을 이용하는 곳으로 수채화를 비롯해 파스텔, 콩테 등 다양한 재료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옥상엔 거대한 놀이터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좋아했다. 항상 작고 좁은 골목길에서만 뛰놀던 나였기에, 옥상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과 너른 공간은 내게 형언할 수 없는 자유였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까, 갑자기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다. 

이유인즉, 미술을 하면 나중에 밥 굶어 죽는다는 엄마의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학원 원장님이 직접 찾아와 딸의 재능이 특별하니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 부탁했지만 내게 다시 그 학원에 갈 기회는 오지 않았다.      


행복했던 미술학원



 두 번째는 4학년쯤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었다.  


어린 시절 첫 피아노 과외 선생님의 손찌검으로 피아노를 싫어했었다. 

특히 어두침침한 한평 남짓한 공간에 피아노와 나, 그리고 선생님의 광기 어린 감시가 있는 그곳은 

내게 지옥과 같았다. 그러나 교회 주일학교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시는 선생님이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생각보다 대형학원을 운영 중이셨는데, 운동장처럼 넓은 중앙테이블에선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음악이론 학습지를 깔깔대며 풀고 있었고, 주변을 둘러싼 피아노실은 각방마다 창문이 크게 있어 햇살이 환하게 내리쬤다. 익숙한 교회친구들이 있었고, 특별히 노래에도 재능이 있다며 원장님께선 성악강습까지 무료로 해주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 성악을 하며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된 나는 잘 치지는 못해도 피아노를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까 체르니 30번대로 넘어설 즈음, 정기 발표회가 있었다. 

기존 발표회에 나갔던 여자아이들은 모두 하얗게 너풀거리는 시폰 레이스 드레스에 흰 타이즈, 

검은 메리제인 구두, 약간의 화장기 있는 모습으로 학원버스를 탔다. 

나 역시 천사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을 생각에 설레며 그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입게 된 건 샛노란 저고리에 꽃분홍치마의 촌스런 한복이었다.  



엄마가 지어준 한복








 한복에 자부심이 있었던 엄마는, 손수 지은 한복드레스를 딸에게 입혀서 

피아노 발표회에 내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엄마의 짙은 화장까지 더해지니 촌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새하얀 눈밭에 떨어진 노란 단무지 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 뾰로통한 얼굴의 연주회 사진이 커다란 액자가 되어 배송되었다. 

잊고 싶은 그날의 기억이 엄마 재단실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아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귤 같지만 단무지임



정말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사진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어떻든 간에, 엄마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분명 다른 한복일을 처리하느라 바빴을 시간을 쪼개, 예쁜 색감의 저고리와 치마를 골라 

구슬땀을 흘렸을 엄마의 노력에도, 끝까지 마음을 풀지 않았던 난 결국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내 첫 연주회는 인생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뾰로통



그렇게 시간이 흘러 외동딸의 엄마가 된 나는, 그날 엄마가 얼마나 애써 한복을 지었을지...

그 정성에 탐복하면서도 4학년 짜리 여자아이가 얼마나 뾰로통해졌을지도 너무나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고마워요! 딸이 사랑하는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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