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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 창업

_다시 불안한 5월.

by 롤빵

아이가 무사히 4월 등교를 해냈다.



그것도 조퇴 없이 5교시까지 모든 수업을 완벽히.

실로 놀라운 기적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모든 분리불안이 해소된 건 아니었다.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던 아이가 5분, 10분 시간을 늘려가며

쓰레기 버리러 가는 시간정도는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우울감도 정점을 치닫아 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두 번째 드라마 보조작가를 끝내고 번아웃이 왔었고, 그 와중에 아이의 분리불안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래도 3월 한 달간 큰 산 하나를 넘어 무사히 4월을 보낸 여파로 긴장이 조금 풀렸던 건 아닐까.

나름 번아웃을 이겨보려 쓴 일일 에세이가 문집으로 나왔지만 당시 내 마음상태처럼 책으로 출간되고 나서도 열어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등교한 시간 동안 그저 누워있거나 방전된 상태로 보냈다. 특별히 그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한다거나, 살림을 열심히 한다거나, 뭔가 작은 일 하나도 성취해나가진 못했다. 공모전도, 보조작가 구직도 더 알아보지 않았고, SNS에 연재하던 일상툰도 멈춘 상태였다. 좋아하던 드라마, 영화, 만화 보는 것도 재밌는 게 하나도 없는..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기력 없는 시간을 보내던 내게 우리 아파트 상가에 난 공실은 약간의 희망처럼 느껴졌다.


“저런 곳에 무인문구 하나 있으면 잘 되겠다.”

마침 투자처를 찾고 계신 시누와 내 상태를 걱정한 남편의 도움으로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쏘아 올린 공은 무인문구점 창업으로 이어졌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 새로운 일거리가 던져진 것이다. 나는 여러 체인들을 검색하고, 결정하고, 오픈을 준비하며 너무나 분주하게 생기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바빠질수록, 관심사가 밀려나기 시작한 아이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시 어렵게 가기 시작했다.

등교시간마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끌고 가야만 하는 일이 반복됐다. 나보다 아빠 말을 더 잘 듣는 딸이라 남편이 아이 등교를 맡았지만, 울고 불고 떼쓰며 버티자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다시 3월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설마 문구점 때문? 이런 생각이 계속될수록 나의 우울도 불안도 올라갔다.

사실 문구점을 차리게 된 것은.. 학교 앞 5분 거리에 있는 우리 아파트 상가에 난 공실이라 이곳에 문구점을 차리면 아이도 쉬는 시간마다 전화해서 내 위치를 확인할 필요도 없고, 엄마가 집에 있다는 확신을 아이에게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부모입장에서의 생각이었다. 아이의 불안 1순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의 정도지,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상담선생님은 너무 이르게 창업을 한 것 같다며 다시 3월 수준으로 돌아간 아이의 상태를 안타까워하셨다. 하지만 분명 우리 부부는 알았다. 적어도 3월의 상태는 아니라는 걸. 학교 가기 전날 밤만 되면 불안해하던 모습은 늦은 시간으로 미뤄지거나 안 하기 시작했고... 학교 친구들 이야기, 학교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도 이야기하면서 전보다 학교를 편안히 인식하는 것 같았다. 불안의 파동이 점점 얕고 무뎌지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는 특히 ‘변화’를 두려워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담임 선생님 등.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이 확실히 느리긴 했지만, 영영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문구점 창업이 아이에게 큰 변화긴 해도, 언젠가 적응할 거라 믿으며 예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아이는 5월 한 달간 4월만큼 등교를 잘 하진 못했지만, 3월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등교를 이어갔다.

가끔 학교를 못 갈 때는 아이를 문구점 일에 참여시키며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는 문구점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할 수 없이 따라다니며, 문구도매점이나 스낵도매점을 다니면서 다양한 세계를 접했고, (안면은 있지만 말걸일 없었던) 학교 아이들과 마주치면 자신을 '문구점 집 딸'로 소개하며 동네 사람들, 학교 친구들, 단지 친구들의 관심을 받으며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이가 알고 있던 초등생 트렌드가 문구류를 사입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아이는 '부사장'으로 명명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되었다. 학교보다 문구점을 더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는 뒤로하고, 그렇게 아이는 또 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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