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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 사귀기.

_6월.

by 롤빵

문구점 일은 항상 바빴다.

오픈발 때문인지 손님도 많았고, 멋모르는 초짜사장은 매주 물건을 사입하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아이는 문구점에서 가게일을 도우며 오가는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같은 관심사의 아이들과 수다 떠는 모습이 한층 안정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 쉬는 시간이면 나의 위치와 동선을 파악해야 안심했다.


정말 특이한 건 학교는 같이 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면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횡단보도를 두 번 정도 건너야 있는 다*소까진 혼자서도 훌-쩍 잘 갔다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든 학원이든 막상 수업이 시작하면 가장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한다는 모든 선생님들의 평가에 주변 지인들은 분리불안 아닌 것 같다며 혀를 차곤 했다. 안심되는 면도 생기고, 불안한 면도 생기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이가 할 말이 있다며 울먹거렸다.

나는 또 무슨 불안한 상태일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담담히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실은 내가... 친구 가방에 바보라고 써버렸어..”

“바보?”


아이가 말한 친군, 얼마 전 학교 참여수업에서 앞자리에 앉은 제법 친해 보이는 여자친구였다. 게다가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뭘로 썼는데? 볼펜? 네임펜?”

“연필”

“에이.. 그럼 괜찮을 거야. 왜 그랬는데?”

“걔가 의자를 너무 뒤로 하고 있어서 앞으로 가달라고 계속 이야기했는데, 앞으로 안 가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진짜 많이 했어. 한 다섯 번?”

“그랬더니?”

“내가 왜? 이러길래...”


아이 딴엔 대화로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제대로 통하지 않아 벌어진 일 같았다.


“내일 가서 친구랑 잘 화해해 봐.. 친한 친구니까 이야기하면 이해할 거야.”

“... 응”


조금 마음이 진정된 표정이었고 아이들 문제는 최대한 아이들 선에서 정리하는 게 옳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는 다음날 화해하지 못했다. 이유를 물으니 쉬는 시간에 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고 했다.

아이는 다음날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러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이는 다음날도 말하지 못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때마다 용기가 안 났다고 했다. 아이의 대답은 솔직했다.


"그래도 이런 일은 그냥 넘어가면 계속 친해지기도 어렵고, 친구가 상처받았을 텐데 힘들 거야."


다음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소문을 낼까 봐 두렵다고 했다. 용기내기 어려운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너무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지만, 충분히 납득 가는 상황이었다. 화해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담임선생님이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 아이들 모두에게 엄하게 경고하신 상황이셨다. 생각보다 사건이 커진 것 같아 바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안 그래도 상대부모님이 누가 그랬는지 알고 싶어 하셔서 여러모로 난감하셨던 차였던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맙다면서 아이가 쓴 바보 사진을 보내셨는데, 웬걸... 내 예상처럼 가방에 작고 조그맣게 쓴 게 아니라, 가방 뒷면을 거의 꽉 차게.. 실내화 가방도 꽉 차게 연필로 '바보!'라고 크게 쓰여 있는 것 아닌가...ㅠ 예상 밖이었고,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되려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이가 사과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못하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 모르게 둘만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화해할 수 있게 부탁드렸고, 선생님은 흔쾌히 응해주셨다. 대신 상대 부모님께도 사과전화를 부탁하셨고,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던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대망의 다음날, 아이가 하교했다.

“다녀왔습니다_!!”

“잘 갔다 왔어? 울 강아지~”


아이 표정은 밝았고, 나는 친구랑 화해했는지 물었다.


“응! 사과했어!”

“정말? 에구, 힘들었을 텐데 잘했어. 친구가 뭐래?”

“말해줘서 고맙데!”

“ 거봐, 친구한테 솔직하게 말하니 풀렸지? ”

"응!"


화해는 어른도 9살 아이들도 참 어려운 일일텐데, 아이들의 대답은 명쾌하고 순수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기도를 한 뒤, (아니.. 꽤나 열심히 기도를 한 뒤) 상대 부모님께 정중히 전활 드렸다.


나 역시 상대부모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라, 긴장이 됐다. 다행히 상대 부모는 아이가 친구의 사과를 받고 화해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많이 풀린 상태였다. 나는 둘 사이 갈등이 됐던 사건과, 아이가 며칠 동안 고민했던 과정, 아이들끼리의 일은 아이들끼리 해소하는 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소신을 전했다.

과정을 경청한 상대 부모는, 아이가 사과를 받고 밝게 하교했을 때 다 용서가 됐다며 공감하는 반응이셨다. 아이 가방세트를 보상해드리려 했는데, 그것도 거절하셨다. 나는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앞으로는 갈등이 생겼을 때 끝까지 말로 해결 할 수 있도록 잘 교육시키겠다는 다짐도, 상대 부모도 아이가 자기중심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알아들으신 것 같았다. 그렇게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나는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상담 선생님께 이야기했고, 솔직하게 담임선생님께 말한 것에 대해 우려를 하셨던 반응이 인상 깊었다. 아이들의 순수함보다, 부모들의 신경전이 교육을 지배하는 요즘 세태에 불안감을 보이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해소되어 아이에게 긍정적인 경험치로 쌓여서 감사했다. 내겐 모든 일이 하나님 은혜였다.

아이는 이 일로 오히려 학교 친구를 편하게 대하는 과정을 배웠던 것 같다. 1학년때는 계속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하며 학교를 잘 갔을 뿐, 학교 생활을 즐기진 못했던 것 같은데. 2학년마저 첫 달을 못 가는 바람에 친구들 사이에 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겼고, 혹여 지금보다 더 학교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염려했던 것 아닐까... 언제부터였는지 아이는 공부도 교우관계도 너무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럴 필요 없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요구를 했었던 걸까? 아니면 나와 남편이 너무 엄하고 무서웠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의 분리불안 덕에 더 나락으로 꺼져버릴 수 있는 번아웃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 같다. 유퀴즈 277회에 나왔던 정신과 의사 ‘윤대현’ 선생님의 말을 빌어보자면, 번아웃을 극복하려면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버틴다는 생각으로 일단 '행동하라!'라고 하셨다. 행동한 뒤에 '그래도 나름 괜찮은 하루였어!' 하며 오늘을 버틴 자신에게 드라마 보기라던지, 커피 한잔이라던지, 감사일기라던지.. 작고 사소한 자기 위안으로 '쉼'을 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행동' 뒤에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


나에겐 분리불안의 시간도, 문구점 창업도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에서 벗어나 그저 하루를 버티는 삶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보낸 시간이 쌓여 '그래도 열심히 살았네.' 하는 ‘쉼’이 되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지금 이런 경험치들이 쌓여, '나 그때 열심히 학교 다녔네!' 하는 쉼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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