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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빵 Oct 21. 2024

나이키, 필라, 그리고...

_ 낯선.

어렸을 적 내 단골패션은 학교 체육복이었다.


체육복은 일주일에 2-3번 꼭 입고 가야 하는 옷 중에 하나였고,      

뛰어다니기 좋아하던 내게 체육복만큼 편안한 복장도 드물었다.

하지만 내심 예쁜 옷을 입고 오는 여자아이들이 부러웠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주목을 받게 된 시절이 있었다.      


6학년.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

매일 시장 운동화만 신었던 내게  생전 처음 나이키 운동화가 생겼다.

하얀 바탕에 청록색 포인트로 로고가 그려진 디자인이었다.     

 


인생 첫 나이키



새 신을 신고 운동장 조회를 섰던 날, 나는 처음으로 남자아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오~ 나이키!"     


장난 한번 걸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남자애들은 새신을 밟으려 나를 쫓았고,     

나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면서도 관심을 즐겼다.

    

필라 책가방도 매고 걷다 보면, 뒤에서 중학생 오빠들이                


"우와 필라 가방. 진퉁이야? 대박."      

"짝퉁이겠지"        

        

하면서 은근히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지나쳤지만, 이 역시 싫지 않았다.



은근한 관종일지도;



입고 싶었던 카운트 다운 흰색 청바지, 청자켓 세트는

평상시 잘 나가는 여자아이가 블랙세트를 입었던 터라 견제도 받았다.      

그게 뭐였 건 존재감 하나 없던 내게 쏟아진 관심은 새롭고 묘한 설렘을 자극했다.


지금껏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또 다른 특별한 관심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사실, 새로운 물건의 대부분은 당시 엄마가 만나던 분이 사주신 것들이었다.       

수많은 선물 공세 끝에 우린 낯선 아저씨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가는 경양식집이었다.      

엄마와 아저씨는 정식세트를 시켰고,

나는 정식이 뭔지 모르지만 가장 양이 많을 것 같은 돈가스 세트를 시켰다.

접시가 나오자마자 후회했다.

정식 먹을걸.         




정식엔 돈가스, 생선가스, 치킨가스, 함박스테이크까지 모두 맛볼 수 있지만,

돈가스는 달랑 한 장의 돈가스가 다였다.

내 돈가스 세트가 갑자기 초라해 보였지만 어쨌든 너무나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연분홍 한복드레스를 손수 지어 입으신 엄마는 그분과 결혼식을 올렸다.

내게 새아빠가 생겼다는 기쁨이나 감흥은 크지 않았다.

아마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나 추억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다만 엄마에게 진짜 보호자가 생긴 것 같은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



한복 드레스를 입은 엄마.




엄마는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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