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마당그네
잔소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믿기 때문이고.
체벌하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이렇게 귀한 자식을 때릴 수 있느냐였다.
참 감사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체벌은 내 평생 딱 한 번이 다였다.
2학년 때였다.
산수를 잘하지 못해서 부진아반을 간 적이 있다.
엄마에겐 말하지 않아 잘 모르셨겠지만,
어린 나도 부진아 반에 들어간 것이 창피하다는 건 알았다.
시험내용까지 기억났는데 예를 들어,
괘종시계 소리를 듣고 어떤 시계소리인지 그림으로 나온
객관식 답을 고르는 유치원생 수준의 문제였다.
어쨌든 그 시험 이후로 다시 원래반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산수는 재미없었다.
그런데 산수보다 더 재미없는 게 있었으니, 산수익힘책이었다.
학교에선 산수 교과서만 배우고 숙제는 꼭 익힘책이었는데,
익힘책은 문제들의 나열이기 때문에 양이 더 많게 느껴졌다.
그런 나를 구해준 건 ‘동아전과’였다.
풀다가 도저히 모를 때 해설과 답을 볼 수 있는 취지의 두꺼운 책이었는데,
나에게 그저 답안지에 불과했다.
숙제를 하기 싫었던 난,
엄마가 정신없이 일하는 틈을 타 몰래 전과를 베껴가곤 했다.
어디에서 전과를 안전하게 베낄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나는…
집 뒤 작은 마당에 있던 원형 그네를 생각했다.
7080 추억의 놀이터에서나 볼 수 있는 그네에 앉아
한낮의 정취를 느끼며 정답을 베끼는 맛이란!
그렇게 3일 연속 숙제를 열심히 하던 나를 이상히 여겼던 엄마는
몰래 내 뒤를 캤(?)고. 거짓말은 그렇게 들통이 났다.
엄마는 나를 끌고 단칸방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나를 믿고, 지금껏 잔소리한마디 없이 키워왔건만….
배신감에 치를 떨던 엄마는 한복 재단자를 치켜들었다.
그날 나는 온몸을 다 맞았던 것 같다.
매도 맞던 사람이 맞아야 요령이 있을 텐데.
생전 처음 온몸으로 체벌을 당하며(?) 나는
엄마의 무서움을 호되게 느꼈다.
지금 생각해도 꽤 창의적인 매질이었다.
뒤로 도망갈 구석이 없었으니까 ㅎ
전과는 버려졌고 이후 다시는 무언가 베껴서 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성실함을 일깨워준 엄마는,
자식을 제대로 훈육할 줄 아는 멋진 엄마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