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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Oct 28. 2023

9개월만에 퇴사한 신입, 다시 돌아간다면?

MZ직장인으로 회사에서 살아남기

전 직장은 정년보장이 되는 공공기관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곳을  9개월 만에 그만뒀다.


팀원들이 하기 싫은 기피업무로 점철된 업무분장에 분을 참기 힘들었고,

아직 어리니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몇 주간의 고민끝에 본부장실로 걸어들어가 퇴사를 하겠다는 폭탄을 던졌다.

한 회사에서 5년차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들은 본부장님의 마음은 처참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새파란 신입사원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본부장님은 여러가지 대안을 주었다.

나의 업무분장을 조정해주겠다고 했으며, 추가로 환기를 하기 위해서 휴가를 갔다오라고 했다.


지금도 아직 뭘 모르지만, 아주 단단히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나는

업무조정에는 흔들렸지만 며칠의 휴가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그 며칠의 휴가가 나의 결정을 바꿀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순간들은 내 가슴 속에 깊이 남아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옳은 방향이었을까 고민하며 현재의 결정에 참고한다. 그때의 결정은 지금 나의 직장생활에 철저한 반면교사로서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후에도 나는 틈틈이 그 당시 본부장님이 제안했던 며칠 남짓한 휴가가

퇴사라는 선택의 변화에 영향이 있었을지 꾸준히 생각해보았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본부장님이 제안한 며칠의 휴가를 꼭 갔다와야한다.

그 며칠의 휴가동안 심적 안정을 찾고 좀 더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여러 조건에서 보았을 때, 퇴사한 회사보다 지금 회사의 조건이 더 맘에 들기에

그 '회사'를 퇴사한 것에는 미련이 없지만 그 '결정'에는 후회가 있기에

그때로 돌아가 퇴사를 하지 않고 계속 그 곳에서 근무를 한더라도 또 그만의 새로운 길들이 열렸으리라 짐작한다.


지금의 나는 긴 휴가를 좋아하면서도, 힘들어한다.

가정의 달이 많은 5월이나 명절이 있는 달의 긴 휴가들을 다녀오면

슬슬 회사에 가서 현장의 감을 느끼고 싶어지기도 한다.

일의 압박이 나를 눌러 마음이라는 풍선이 터질 것처럼 힘이 들 땐 하루 연차를 사용한다.

업무에 큰 지장이 없으면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회사의 분위기 덕에 휴가 사용은 크게 어렵지 않다.

단 하루의 연차가 풍선의 바람을 빼주고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던 것처럼 만들어 주기도 한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하고 남은 시간은 '배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전 제일기획 부사장 최인아님은 퇴사 후 2년 뒤에 결국 자신은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의 책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안에 그녀의 심정이 잘 담겨있다.


여행의 본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여기를 떠나는 것’이더군요. 자신이 일상을 보내던 곳을 떠나면 그곳에 두 발 담그고 있을 땐 보이지 않고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드러납니다.

‘여기’에 없어봐야 비로소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되는 거죠.

어떤 것의 온전한 의미는 부재, 혹은 결핍을 통해 알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낸 2년여, 그 시간이 제겐 그동안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여행을 떠난 것과도 같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혹은 새벽까지, 그리고 주말도 없이 잔뜩 긴장한 채 일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던 시간에서 걸어 나왔던 거죠. /책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배우는 것과 일은 본질이  다르다.

일은 내가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며 어떤 산업의 이바지하고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감정을 준다.

그렇게 그녀는 50대의 나이에 '최인아책방'을 열고 다시 '일'을 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일해도 그것의 1/10밖에 안되는 시간 안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앞서 간 사람의 결정을 나는 또 참고한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것을 틈틈이 스스로의 회사생활에서 느낀다.

몇달동안 쌓인 일의 압박이 며칠의 연차휴가로 숨통이 트이며

몇십년의 회사생활은 이미 소진된 것같지만 단 몇년의 휴식으로 다시금 사람을 충전시킨다.


그래서 지금은 회사에서 힘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 휴식이 필요해. 지금 쉬어야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리고 속지말자. 지금의 고통에 속지말자. 지금은 휴식이 필요할 뿐이야.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 하는 결정은 어리석은 결정일 가능성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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