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of Life] 소리의 별을 듣다.
“지구라는 거대한 라디오”
2018년 12월 7일, 화성 ‘엘리시움 평원’에 안착한 탐사선 ‘인사이트’호는 특별한 선물을 지구로 보내왔다. 바로 화성의 바람소리. NASA 제트추진연구소가 유튜브에 공개한 20초 남짓한 이 소리는 사실 탐사선의 지진계를 스치고 간 화성 바람의 떨림과 진동이다.
가장 낯설고도 익숙한 화성의 소리 꼭 한번 들어보시라.(https://youtu.be/IkpZXYrOCyg)
(인사이트 호의 모습과, 화성의 소리를 공개한 유튜브 캡처화면)
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잡음’ 혹은 묘하게 고요하고 적막한 떨림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모두들 왠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는 단서를 붙인다. 화성에 가본 적 없는 지구인들이 왠지 들어본 적 있는 소리...
‘낯설지만 왠지 익숙한 적막한 떨림...’, 태아가 엄마의 양수 속에서 듣는 소리와 비슷하다.
엄마의 양수 속에서 듣던 소리를 기억하는가? 기억을 꺼낼 순 없지만 분명 그 소리의 기억은 갖고 있다. 신생아를 진정시키는 육아비법 중 검은 비닐봉지를 아이의 머리 근처에서 비벼 소리를 내는 방법이 있다. 그 소리가 태아시절 귀로 듣던 엄마의 심장소리와 닮았기 때문이다. 소리는 기억능력을 뛰어넘어 기억되는 최초의 메시지고 존재의 증명이다. 인간에게 소리는 이 세계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확인받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신호다.
생명을 키워내는 엄마의 양수 그 작지만 위대한 바닷속에서 아이는 귀로 듣는 소리를 통해 처음 자신 그리고 아직은 자신이라 믿는 어머니의 존재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에게 남아있는 감각 역시 ‘청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라는 임종의 조언을 많이 듣는다. 소리는 존재의 시작과 끝을 담고 있다.
화성의 소리에서 출발해 존재를 증명하는 신호로서의 소리의 의미를 탐닉하다 보니 그 소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과학적 상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리는 전달되는 공간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한낮의 개 짖는 소리와 한 밤중의 그 소리가 다른 것처럼, 물속의 소리와 물 밖의 소리가 그렇듯 같은 소리라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소리는 전혀 다른 모습, 느낌이 된다. 이런 의미라면 화성의 대기 질은 지구와 다르다. 이산화탄소가 가득하고, 풀잎과 습기보다는 극단적인 변화와 모래폭풍이 가득한 화성에 가서 내가 지르는 고함은 지구별 서울 거리에서 지르는 고함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될 것이다. 어쩌면 진짜 화성의 소리는 단 한번, 목숨을 걸고 맨 귀로 듣지 않는 한 지구인에겐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이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 본다면 ‘인사이트’호가 전해준 화성의 소리는 이미 지구인의 귀를 위해 한번 ‘통역’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화성의 소리가 궁금하다면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최근 중국, UAE 등 세계 각국이 화성 탐사에 한발 다가서고 있고, 생명의 흔적을 찾고 생존 조건을 가늠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SF영화 속에서나 화성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속 주연 ‘멧 데이먼’) / (Pixies, Planet of Sound, 91년, 영국)
어쨌든 그 ‘화성의 소리’는 데이터와 전파의 떨림으로 바뀌어 지구로 왔다. 떨림, 파동, 흔들림이 바로 소리의 실체다. 소리굽쇠를 보라. 눈을 크게 뜨고 튕겨진 통기타 줄을 보라. 소리의 본질은 흔들림이다. 그 흔들림이 클수록 낮고 우직한 소리가 나고, 그 흔들림이 작을수록 여린 소리가 난다. 바닷가에서 파도를 소리로 만나다 보면 큰 파도와 작은 파도의 소리는 다르다. 제각각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증명하는, 자신을 묘사하는 소리를 갖고 태어난다.
삶도 마음도 늘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살아있다는 증거. 화성의 소리는 화성이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도 그 별의 인간이라곤 한 명뿐이지만 끊임없이 소리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화성기지에 남겨진 음악을 틀며 인간다움을 느끼고, 바람 소리에 수시로 고개를 돌린다. 지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가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를 감싸도 때론 이 시끄러운 별에 오로지 나 혼자만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내 마음을 달랠 음악이나, 반가운 목소리를 혹은 가장 미약한 흔들림인 고요함을 찾는다.
그런데 문득, 화성의 소리에 심취하다 보니. 오히려 지구의 소리라는 것이 무척 낯설다. 생각해 보니 지구는 무척이나 시끄럽다. 무수한 소리로 가득한 별. Planet of sound! 얼터너티브 록 밴드 Pixie의 다소 시끄러운 음악 제목이기도 한 ‘Planet of sound’.
그러나 살아있음을 ‘웅변’하는 이 시끄러운 별 지구엔 역설적이게도 입과 귀를 막고 사는 사람들, 제 스스로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 자신과 타인의 귀를 막아버리는 인간들이 아주 많은 별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구를 화성보다 적막한 별로 만들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의 소리, 인위적인 소리는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자연이 만드는 일상의 소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재앙 ‘핵폭탄’이 만드는 단시간의 소리를 제외하고서는 인간이 파도나 천둥의 소리를 넘어서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미약한 소리라도 자연의 소리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지구의 소리가 크고 위대하고 압도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론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아주 조용한 소리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소리가 있다 바로 52 혹은 52Hz는 고래가 내는 소리다. 이 고래는 1989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수중 청음 장치에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1992년 미 해군은 주파수 이름을 따 52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특이한 건 일반적인 고래가 내는 소리의 주파수 12Hz~25Hz와 달리 이 고래만 52Hz의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
■ 2Hz의 소리를 내는 고래의 실제 울음소리, 제공:BBC ■
(https://soundcloud.com/bbc_com/the-52hz-whale-recorded-by-bill-watkins)
물속에서는 전파나 빛의 역할을 ‘소리’가 하고 있다. 고래의 울음소리는 고래가 내뿜는 빛과 같다. 물속에서는. 그런 이유로 실제로 해군은 소리로 적의 모습과 형태를 감지한다. 지구의 물은 제 각각의 형상에 따라 다르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일종의 고유의 파동이 생기는 건데 지구의 물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물 분자에서부터 그 분자 속의 원소들까지 모두 흔들리며 서로를 이어주고, 서로를 알아보게 한다. 지구의 70%가 물인 것처럼 인간 몸의 70%도 물이다. 인간도 서로를 저 파동처럼 이해하고 알 순 없을까? 그래서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물을 보고 있으면 고요해지면서 내면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어쩌면 물은 마음을 알 수 있는 흔들림, 소리의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이 드넓은 바다에서 굳이 외로운 고래의 소리를 애타게 찾는 인간의 알 수 없는 마음처럼...
본격적으로 물의 소리를 탐구한 영화가 있다. 다큐멘터리의 거장 감독 빅토르 코사코프스키의 영화 ‘아쿠아렐라(2018)’는 초당 94 프레임으로 촬영된 명작 다큐멘터리다. 오로지 지구의 물만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89분의 이 영화는 대사도, 내레이션도, 마땅한 주인공도 없다. 오로지 다양한 물들로 펼쳐진 89분의 향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압도되는 것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명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물의 모습보다는 그 ‘소리’, 정확하게는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이다. 첫 장면의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소리는 적막함 속에서 고체로 변한 물이 내는 강렬한 파열음과 그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외치는 사람의 소리가 섞인다. 그 외에도 거대한 파도, 폭우와 안개 등이 끊임없이 시선을 뺏기고 있을 때, 귀를 열면 온전히 소리에 압도된다. 정작 거대한 높이의 파도나, 빙하의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에겐 그 소리가 이 세계의 본질이라는 걸 그 소리의 파동이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라는 걸 웅변하는 듯하다.
만약 지구가 저 먼 우주 어딘가로 지구별 자체의 소리를 보낸다면, 황량한 사막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아니라 물소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물과 사람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 내 생명이 처음 시작되고, 내게 처음으로 소리를 전해준 물. 그 물소리는 물을 품고 있는 살아있는 것들을 소리굽쇠처럼 공명 시킨다. 어머니 뱃속의 양수라는 작은 바다에서 외롭게 노래하던 귀여운 고래였던 우리는 소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듯이. 지구는 이 거대하고 컴컴한 우주의 무한한 바닷속에서 노래하는 고래는 아닐까? 혹은 컴컴한 우주에 틀어놓은 거대한 라디오.
(1985년 live Aid에서 퀸이 Radio Ga Ga를 부르는 장면, 출처 :Live Aid 유튜브채널)
우리의 존재를 알고, 알려주는 것은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앞의 이야기들처럼 지구는 소리의 별이다. 다양하고 시끄럽고 슬프고 기쁘고 화나고 재미있는 소리들이 멈추지 않고 왁자지껄한 별. 때론 침묵조차도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는 지구. 지구는 소리의 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문득 내가 일하는 일터인 ‘라디오’가 겹쳐진다. 라디오도 24시간 가끔의 침묵과, 가끔의 정제된 시보를 제외하고서는 쉼 없이 소리로 서로를 이어주고,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85년 영국 웸블리 구장을 가득 채운 10만 관객 앞에서 그룹 퀸이 부른 ‘Radio Ga Ga'의 노래가 한 편의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느껴진다. 그때 잠시 지구로 찾아온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은 지구를 소리의 별인 동시에 라디오의 별 아니면 라디오 그 차제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The Planet of the Radio 라디오의 별 지구. 외롭고 적막한 밤에 라디오를 켜고 스스로를 달래는 누군가처럼. 이 우주 속의 무수한 외계인들은 귀를 열고 지구라는 라디오를 켠다. 그리고 사연을 듣고, 울고, 웃으며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끝.
방송과 기술 2021년 3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