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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01. 2024

잔소리, 암쏘리(I'm Sorry)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잔소릴 용서하지 않겠다!

판소리와 잔소리


 판소리 공연은 관객도 함께 극을 완성해 가는 입체적 예술이다. 소리꾼의 이야기와 노래는 고수와 객석의 추임새를 딛고 무대를 3D로 가로지른다. 하지만 그 추임새나 이른바 “리액션“은 공연과 그 소리의 맥락을 이해한 자의 몫,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그렇지! 아믄~!“ 이라고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는 어디서 잔소리여!? 하는 꾸지람을 듣는다.


“거 잔소리... 참 거시기 하게 맥락 없어 분다이~.”


잔소리는 사전에서는 쓸데없는 소리, 필요이상의 꾸지람이라고 정의한다. 소리판의 사례처럼 너와 나의

맥락(Context)을 벗어난 오해 유발요인이 된다. 하지만 잔소리하는 사람의 마음은 차마 더는 세게 소리를 내지 못하니 메인 메뉴는 못 꺼내고 식전 후 간식처럼  본심의 주변만 잘라서 듣는 이의 주변으로 보낸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보내는 그 본심의 큰 뜻은 결국 소소한 잔소리로 변환되어 나가니 큰 뜻임을 알릴 방법이 없다. 잔소리는 잔소리일 뿐. 본심이 사랑이라면... 그저 사랑한다고 하면 된다!

(세일러문의 한 장면. 명대사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는 시대를 관통하며 읊어지는 주문이다.)


잔소리 메뉴판! 부가세 포함!


  곧 명절이다. 추석 차례상에 모인 대가족들... 어느새 더 자란 꼬맹이들과 입시생들과 대학생 취준생과 노처녀 노총각들이 모인다.

  반가운 인사 뒤에 서로 나이와 삶의 처지가 비슷한 끼리끼리 방 하나를 진지삼아 경계와 탐색전을 시작한다. 가장 연장자 할머니는 호시탐탐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한 마디 할 대상을 물색하신다... 불안에 떠는 엄마 아빠의 시선엔 썩소 위장막을 치고 핸드폰 뒤로 엄폐한 녀석들이 보인다.


 “그래... 엄마 아빠 닮았으니(혹은 닮지 않았으니) 공부 열심히 해서 일류대학 가야지?... 넌 살 좀 빼야겠다. 그래야 좋은 신랑감 구하지!(앗 어머니!!! 안돼~~~!) 어이구 인물 좋은 우리 손주! 고시든 대기업이든 뭐든 못할까... 이쁜 여자들이 줄 설거야!!(오마니...오마이...갓!)“


 사색이 된 부모님들과 “어쩔” 표정으로 마음이

상해버린 녀석들... 어릴 때와 달리 맛난 음식도 근처 슈퍼에 가자는 꼬드김도 얼음장이 된 녀석들을 되돌릴 수 없다. 아... 큰소리를 부르는 잔소리여... 도대체 이

잔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악습일까...? 오죽하면 요즘은 잔소리 메뉴판이 떠돈다. 한 블로그에 올라온 잔소리 메뉴판을 보니. 입을 열려던 어른들 입과 지갑을 닫게 만든다. 확실히... 비싸긴 하다! 그래도 그 값은

제대로 할 것 같다.


(출처 : 우리동네 블로그)


  잔소리, 정소리, 그리운 소리


  듣기도 싫고 비싸기도 한 이 잔소리는 일상의 소리 중엔 최악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류의 데시벨(db:음량)이 크지 않은 소리들은 신경은 좀 거슬리지만 사실 건강한 긴장과 일종의 최면효과도 준다. 마트에서 틀어놓은 배경음악(BGM)이 심리학적으론 쇼핑 행동과 패턴을 유지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내일 주제를 미리 예고...^^;) 길조심 차조심 사람조심의 잔소리는 멍하게 의식을 놓고 위험지대를 걷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재생되는 일종의 경고음 역할도 한다. 물론 100만 번 중에 한두 번 통하겠지만...


  나이가 들고 부모가 노쇠해지면 잔소리도 늙는다. 소리의 힘도 약하지만 잔소리의 가짓수도 한정되고 그 횟수도 준다. 그렇게 싫던 잔소리가 그리워지고 아쉬워진다. 이젠 챙김 받기보다는 챙겨줘야 할 것들 투성이인 중년을 지나며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인 잔소리를 꺼내 들으며 자꾸만 아이처럼 운다. 속상해서가 아니라 그리워서...


  큰소리 못하고 잔소리하던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 뒤에 잔소리가 얼마나 정 넘치는 소리였는지 알게 된다(물론 위의 메뉴판 잔소리는 금기!!).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이들을 주저앉아 울게 만드는 기억도 일상의 잔소리들이다.


잔소리들(번역)

“제발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아프지 마, 사랑해)

“술 좀 줄여!!“(아프지 마, 사랑해)

“그만 놀고 공부 좀 하지?”(사랑하는 거 알지?)

“또 밤새고 늦잠 뭐 되려고 그래?!“(어떻든 널 사랑해)

“깨끗이 방좀 치워라!!“(그래도 널 사랑해)

“나 없음 어쩌려고 그러냐...”(영원히 사랑해)


  잔소리를 할 때마다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해도 나중에 덜 그립고 힘내라고... 초록이들에게 주는 고약한 거름처럼 단단해지라고 쇠에 주는 망치처럼 하루 한 뼘 커가는 성장통으로  잔소리를 건넨다. 물론 잔소리 가득 “암쏘리!” 마음도 숨겨 건넨다.


- 잔소리하다가 지쳐 내가 들은 잔소리를 떠올려보다... 눈앞이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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