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내일이 지나면 모레가 되어
모레 뒤에는 글피가 온다고 했지
12월에 잔잔한 왈츠처럼 내리는 첫눈이
어느덧 이 메마른 연말을 적시고
남모를 미소짓게 만드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추억이
잠에서 깨어난다
보아라,
그렇다고 너의 얼굴이 흩어지거나
목소리가 희미해져 덧씌워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박한 심정도 없는 채
이제 그저 행복하고 밝았던 날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슬픔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이
이제 못내 아쉬워 텅 빈 겨울 가로등 밑을
이유 없이 혼자 걸어보는 날 없으며
시집에 담을 시의 각운과 두운을 맞추며
사치스럽게 보내는 주말도 없다
순수서정시집, 옛 시절의 순수에서
찾아온 메모는 반갑지만
이상하고 이해하지 못할
낯선 외국어로 쓰여 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내일이 지나면 모레가 오고
나는 배운다
삶이 때로 가혹하지만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보아라,
그렇다고 너의 얼굴이 흩어지거나
목소리가 희미해져 덧씌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배웠고
나는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