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의 사랑의 시
-기형도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1989년, 만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질투는 나의 힘', '엄마걱정', '빈 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등의
그의 유명한 시들은 물론 뼈아프게 슬프고 처연하며 아름다웠지만...
나는 이 시가 좋았다.
너무 이른 죽음 때문에 그의 시에서
온통 절망의 목발질과 어두운 심연을 읽어내려는 자들의 글들이
그의 시에 대한 평가로 자리매김됐었지만...
오히려 생명과 강렬한 사랑의 열망으로
그의 아름다운 시들은 빛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혼이 타오르는 날'은 물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고
영원히 그에게서 사라져 버린 시간이겠지만...
그의 시는 이렇게도 남아 드디어
'꽃으로 선'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생을 사랑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