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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Sep 23. 2024

걷는 나무, 떠도는 신

느지감치 그림일기 8

 1.

 화가 알렉스 카츠는 “예술은 내가 본 것을 당신에게 보여주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본다. 모두가 똑같이 본다면 세잔 이후에 사과를 그리는 화가는 거의 없어졌을 것이다. 심지어 모네는 같은 건초더미인데 볼 때마다 너무 달라 보였다. 빛이 변할 때마다 다른 건초더미로 보였으니, 그렇게 여러 번 그렸을 것이다.

 모두 다르게 보기에, 나만 보는 것이 있고, 그래서 예술이 존재한다. 나는 어느 밤, 이상하게 생긴 나무를 만났다. 그런데 그 나무는 걷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걸었지만 걸었다. (그 밤, 음주 여부는 말하지 않겠다.) 물론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려보았다. 아마추어에게 가장 높은 장벽은 역시 표현능력이다. 그럼에도 그렸다. 그러니 믿어달라고.

 좀 허전하다. 뒤쪽에 사막여우라도 한 마리 등장시켰어야 했나? 아마추어에게는 장벽이 있다. 두려움이다. 대신 머리 위에 별이 있다.


걷는 나무 (410*605)



 2.

 어느 날 선생님이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선물이야, 김자까.”

 크록스라고 하나? 고무로 된 슬리퍼였다.

 “왜?”

 “샀어, 줄라구.”

 “말도 잘 안 듣는 제자한테, 왜?”

 진실이 등장하는 조건으로 소주 두 잔이면 충분하다.

 “나 신을라고 샀는데, 너무 커서.”

 이유야 어쨌건, 주구장창 신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밤, 바닥에서 쉬고 있던 고무 쓰레빠가 말을 걸었다. (그 밤, 음주 여부는 말하지 않겠다.)

 자신의 고향은 하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나는 따져 물었고, 그는 구체적으로 하늘구 구름동 어디 어디, 주소까지 말했다. 다시 어디를 다녔냐고 물었고 그는 ‘너는 말해도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림선생님이 홈쇼핑에서 주문만 안 했어도 지금 자신은 페루 어디쯤에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렸다.


떠도는 신 (33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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