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10
1.
변기에 앉아있는 상태를 나는 ‘반코마상태’라고 부른다. 살아는 있되 정신이 반쯤은 어디론가 떠나고 남은 반쯤에 무의식이 올라와 있는 상태. 이때 보통은 작은 공간 안에 혼자이다. 물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앉아있는 상태이지만, 그 확실한 목적은 왕성한 두뇌 활동이 필요한 행위는 아닌지라 정신은 슬쩍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다.
이때 무의식이 은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지난밤 취중에 뿌려댄 주사가 하나둘 생각나기 시작하고, 30여 년 전, 이성에게 들이댔다가 까였던 수치심이 어찌 살아남아 구체적으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혼자 앉아 생전 쓰지 않던 욕지거리를 뱉다가 밖에서 누군가 ‘뭐라고?’를 외치면 후루룩, 잠깐 꿈에서 깬다. 그리고 다시 반코마에 들었다가 비데가 끼룩거리는 소리를 ‘저엉신 차려, 저엉신 차려.’ 이렇게 한국어로 해석하고 나면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다.
어느 날 그런 반코마상태에서 수건걸이에 매달린 빨래집게를 바라보는데, 그만 집게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두 개였고 두 그림자의 색이 달랐다. 이는 하나의 몸에 어린 두 개의 역사였다.
‘그림선생님도 이혼만 했는데, 너는 혹시 재혼도 했니? 아냐, 그럼 다중인격? 아니면 빨래집게가 다중우주를 거쳐 왔나?’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소리친다.
“뭐라고?”
이제 비데를 번역할 순서.
후에 이 작은 그림을 선생님에게 내밀자,
“아, 광원이 두 개이니까 그림자가 두 개이지요.”
어떤 때는 참 답답하다, 선생님.
2.
인물화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며 그 모델을 떠올려야 하고, 그 모델이 그림을 보며 만족해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냥 무명의 그림으로 벽을 향해 기대 긴 어둠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여편을 그릴 용기를 냈었다. 그리고 포기하려는 바로 다음 순간 여편이 지나다가 우연히 자신의 사진과 빈 캔버스를 보고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잘! 해! 봐!”
나는 긴 시간 사진을 보고 있다가, 내 실력으로나 모델의 칙칙한 표정으로나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에두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결과물이 이것이다. 이 그림을 본 선생님의 짧은 훈화는 이랬다.
“안 혼났어?”
샤워는 화장실에서 한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습관대로 칫솔을 뽑아 입에 물었다. 내 무의식은 뭔가 다르다고 느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색을 보니 내 것이 아니었다. 같은 포장에서 나온 칫솔이라 모양도 같고 티미한 색깔도 비슷한 탓이다. 문제는 내 입이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칫솔이 내 것이 아니데.’ 중얼거리고 만 것이다.
길고 기인, XX이 시작되었다. 마치 내 구강 내부가 온갖 바이러스의 우드스탁 페스티벌(너무 옛날인가?)이라도 되는 듯.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쓰면 되잖아!. 그거까지.”
비록 모세가 납작한 돌판에 글씨를 새기다가 산에서 내려와 방주를 건조하던 시절이기는 하나, 한때는 뽀뽀도 하던 사이었잖은가? 화풀이를 돌려주고 돌아서다가 어두운 거실에서 이 그림과 마주쳤다.
“헉!”
어둠 안에 있는 그림에 놀라 두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내 모세혈관의 미세한 떨림까지 노려보는 저 눈빛.
“아, 정녕 누가, 내가 그렸단 말인가!”
한번 사용한 그 칫솔은 사라졌고 며칠 후, 싱크대를 청소하는 현장에서 목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