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11
1.
21년 전, 지역의 작은 도시로 이사 오면서 처음으로 아파트란 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23평에 전세 3천4백만 원. 서울 주변부에서 내가 살던 10여 평 다세대주택 전세가 딱 그 돈이었다. 아파트는 참 좋았다. 특히 여편께서 참 좋아했다. 아이는 신나 뛰어다녔다. 넓고 조용하고,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먹고사는 일 빼고.
그 사이 두 번 이사를 했고 지금도, 넓이도 높이도 똑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딸놈만 따로 살고 있으니 실평수는 조금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더운 날, 최소한의 의복으로 거실 바닥에 누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꾸로 베란다 밖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가까운 다른 아파트가 왜곡되어 하늘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창 중 하나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자세히 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갇혀있는 것 같았고 이유 없이 쓸쓸해 보였다. 그 좋던 아파트에 누군가가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
작은 캔버스에 아파트를 그리다 보니 외려 하늘이 더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하늘에는 반짝이 화이트 추가. 약간은 장난스럽게 맥 빠진 사람도 붉은색으로 추가. 그림을 본 누군가가 한마디 한다.
“창가에 고양이가 앉아있네.”
2.
요즘 아파트들은 왜 그리도 높은지, 남의 아파트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려 창 쪽으로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파트 머리 위에 뭔지 모를 구조물을 쓰고 있다. 헬리콥터 선착장인지, 달맞이 부스인지 알 수 없지만 인근 대도시에서 본 아파트 꼭대기는 이렇게 불빛까지 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달이 떴다.
딸놈께서 쓰던 캔버스에 뭔가 굳은 덩어리가 도드라져 있다. 질감을 주려 물감 덩어리를 붙여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거기가 딱 달의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