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바닥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22

by 김병호

우리 존재의 바닥은 허약하다. 우리가 존재하는지 제대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입자들의 행태들이 그렇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그들은 노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가능성의 구름으로 떠돈다. ‘어디에 있을 확률이 몇 퍼센트’ 이런 식이다. 그러다가 가끔 ‘뿅’ 하고 입자의 모양으로, 그러니까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 거기 있다고 확신하는 모든 존재들이 이렇게 가능성의 확률로만 떠도는 구름들의 합이다. 심지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라는 의심할 수 없는 존재부터가 그렇다.

우리를 이루는 바닥이 이러하기에 사실 모든 것이 허약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럴진대 인간이 만든 제도는 어떨까? 깊게 따질 것도 없이 제도는 그저 약속일뿐이다. 몇이 모여 이리저리 하자고 만든 약속이다. 그런데 약속이라는 단어 안에는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성분이 아주 노골적으로 들어가 있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고 가까운 주변을 살짝만 살펴보면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꼭 돌아오겠다는 항구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내 안에는 너밖에 없다는 맹세는 그 시효가 아주 짧다.

그럼에도 우리가 모여 사는 공동체는 그 허약한 약속을 기반으로 꾸려진다.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약속일지언정, 그것을 믿기에 이것에 기대 사람들은 모여 산다. 예를 들면 이런 약속들이다. ‘우리는 생명이기에 서로를 헤치지 말자.’, ‘다른 건 몰라도 상처는 주고받지 말자.’ 이것이야말로 공동체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이런 약속의 허약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이 약속을 공부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자칭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이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도와 법률 같은 것이야말로 그 약속 중 하나이다. 그리고 지금 이 약속에 뚫린 구멍과 허약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강짜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 무지한 몇이 사회를 흔들기 시작하자 우리 근본이 무너질지도 모를 지경까지 흔들리고 있다.

그리 길지 않게 산 경험에 비춰보아도 어디에나 무뢰배들은 있다. 일상의 구석에 숨어있던 그들은 인간관계의 느슨함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이다. 지금 그들이 전면에 나서 우리 공동체의 근본을, 존재의 바닥을 뒤흔들고 있다. 자신은 그따위 약속 같은 것은 한 적 없다고 악을 써대면서 어디 할 테면 해보라고, 배 째라고 웃통 까고 드러눕고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알래스카 인디언들은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에 단호하다. 작은 사건 하나가 바로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 무뢰한이 등장하면 그들은 바다로 사냥을 나가 가장 먼저 그를 쏴버린다고 한다. 바다사자의 먹이가 된 그를 보면서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나머지 사냥을 마무리한다. 또한 식량이 떨어진 혹독한 시기에는 자신의 목숨을 공동체의 식량으로 내놓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물론 끔찍한 얘기이지만 우리 사회에도 이와 비슷한 끔찍한 일을 벌인 이들이 버젓이 드러누워 버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허약한 제도에 기대 그들을 단죄하려 애쓰고 있다. 참 그 약속 한없이 허약하다. 그래서 나는 실제에서 잘 작동하는 실질적인 싸움을 상상하고 있다. 아직 그저 상상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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