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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Jun 24. 2024

오래전 그 여자의 싸움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

 1.

 40여 년 전, 어느 시골마을을 둘러보면, 거기 아홉 살 여자아이가 있다. 감나무 그림자를 길게 늘여놓은 여름 해가 앞산 아랫자락에 꼴딱 걸린 즈음,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는 땡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조심스레 집안을 살핀다. 누구나 안다. 한동안 노는 일에 정신줄을 놓쳤던 것이다.

 아홉 살 여자아이가 수련장을 밀어놓고 몰래 집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많다. 그리고 다시 계획보다 귀가가 늦을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논두렁에서 흔들리는 잡초 포기 숫자만큼은 된다. 그 이유들은 하나하나 욕할 수 없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어제는 숨바꼭질 때문이었다. 온 힘을 다해 꼭꼭 숨은 여자아이를 동네 언니와 친구들 모두 정말로 찾지 못하고 모두 집에 가버렸다. 

 오늘은 핀치기를 하다가 싸움이 일어났다. 있을 수 없는 싸움이었다. 동네를 쥐락펴락하는 거친 아이에게 조용하기만 한 영자가 눈을 까뒤집고 대들었기 때문이다. 둘은 30분 이상 서로의 머리카락을 쥐고 놓지 않았다. 그렇게 마을 뒷산을 향하는 길을 둘의 빠진 머리카락으로 검게 메웠으니, 아무리 해가 지고 별이 뜬다 한들 어찌 때맞춰 집에 올 수 있었을까. 

 집 안에 든 아이 앞에 비극처럼 익숙한 결말이 펼쳐진다. 열린 부엌문 안에서 엄마가 걸어 나왔다.  

 “아까 보니께 방구석이 비었더니, 니 년은 누구냐? 가만 보니께 공부책 팽개치고 놀러 나간 내 딸년하고 비슷허네. 어디 얼굴 좀 보자.”

 엄마 손에는 매번 그렇듯 부지깽이가 들려있다. 그렇다고 실제로 맞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때 아이였던 여자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그렇게 하나 싸움의 기록이다.     


 2.

 40여 년 전 그 여자아이를 살피자면, 노느라 여기저기 흙이 묻기는 했어도 여느 시골 아이보다는 깔끔한 차림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시골 마을에서는 나름 공주대접을 받는, 좀 사는 집 큰딸이었다.

 아홉 살이래 봤자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로 겨우 동그란 눈망울이나 올라올 터였고, 공주일지언정 까무잡잡한 피부에 삐쩍 마른 솔가지 같은 시골 아이였을 것인데, 겉으로 시어머니에 순종적으로 지냈던 며느리이면서, 시집살이 스트레스에 날이 서있는 엄마인 성인 여자를 향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싸움이라 할 수 있을까?

 솔방울만 한 주먹을 다져 쥔 아이가 엄마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무기라고는 독기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독기 또한 엄마로부터 물려받았을 확률이 높다.

 아이는 따박따박 따지다 못해 악에 바쳐 소리를 질렀다.

 “이러려면 죽어, 죽어버리지, 죽어버릴 거야!”

 아이는 엄마가 싫었다. 우체국에 다니던 아빠는 마을사람 누구나 선망의 눈으로 바라봤지만, 엄마는 그에 어울리지 않았다. 농사일을 하느라 항상 추레했고 순간순간 큰딸을 거칠게 대했다.     



 3.

 엄마는, 그러니까 성씨가 다른 며느리는 집안의 권력관계 밖에 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딸과는 남편을 가운데 둔 경쟁관계에 있다. 딸은 엄마가 아빠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으며, 엄마는 남편 안에 딸이 가진 지분이 자신의 것보다 더 많지 않은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또 하나 관계는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학대의 고리이다. 여자인 시어머니는 밖에서 들어온 여자인 며느리를 적대시하고, 여자인 엄마는 작은 여자인 딸이 남편의 성씨를 가진 작은 시댁식구로 변하는 순간을 만난다. 이 순간 어느 시골 작은 집안은 관계의 분투장으로 변한다.

 엄마는 부엌문 앞에 서있던 농약병 하나를 들고 온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뚜껑을 열어 딸에게 내민다.

 “그려, 마침 잘 되었네. 이거 마시고 너 죽고, 나 죽자. 참말로 살기 되고도 된디, 이 에미하고 같이 죽자, 이년!”

 이때 울타리 너머에서 동네 아재가 한마디 거든다.

 “워디 못 배운 년이 지 에미헌티 저 짓거리라냐?”

 작은 불똥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아이는 꿈틀대는 오기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농약병을 받아 든다.     


 4.

 이상한 전이들이다.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그 집안과 다른 성씨를 가진 이방인이 된다. 내 배 아파 낳은 딸도 성씨는 남편의 것이다. 이런 집안 구조는 과학적인 사실에 반한다. 유전적 계통을 연구할 때 세포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하는데 이것은 모계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모든 자식은 엄마와 가까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농약병을 입으로 가져간다. 정말 들이킬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다음 순간 아이는 병을 집어던지고 우물가로 달려가 오래오래 얼굴을 씻었다. 싸움에 진 것이다. 이때 등 뒤에서 엄마가 웃었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아니면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독한 년.’이라고 되뇌었을 수도 있다. 아이는 서러웠다.

 오늘의 여자가 기억한다.

 “정말 농약냄새가 확 나는 거야. 이렇게 괴롭힐 거면 왜 낳았냐고 소리치면서 푸르르 몸을 떠는데, 농약냄새가 확 나는 거야.”

 물론 농약을 비우고 물을 채워 놓은 지 오래된 병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은 강한 농약냄새가 한 여자 아이를 50대의 여자가 되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나 싸움 위에 이 정도의 시간이 쌓였다면 그것은 이미 사건도 기억도 아닌, 그냥 이야기일 뿐이다. 누가 어떻게 바꿔도 상관없는 설화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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