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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Jul 11. 2023

이곳

밤이 찾아와 어두워진 하늘을 보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참으로 괜찮기만 한 걸음으로

그렇게 이곳을 떠나려 했다     


이곳 바닥과 벽에 깊게도 박혀있는

나의 여러 조각 기억과 망각은

땀과 신경증과 우울과 분노와 불안이다     


이 모든 슬픔이 전쟁터의 공기만큼 뜨겁고

그 시절 멀어진 연인의 흔적만큼 냉랭하니

두툼한 헝겊으로 뒤덮고

무디어진 맘으로 돌아서려 했건만     


여전히 내게 붙어있던 한 가닥     


딱 한 올의 질긴 끈이 괘씸하게

심장 끝자락 건드려 아릿하게

살짝 저리고 은은하게 아프게

기어이 한쪽 눈이 울게 만드는 것이다     


서글퍼하기 싫은 서글픔과

아련해하기 싫은 아련함과

그리워하기 싫은 그리움이

울기 싫은 울음을 끝내 조각하는 것이다     


이미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발밑의 미련을 툭툭 적시고

수천 번쯤 부수고 싶던 곳의 면면을
결국에 돌아보고야 말았다 나는     


길 잃은 입꼬리는 남몰래 떨리는데

부슬비 젖은 눈빛만이 덤덤히

웅크린 과거의 향을 맡는 것이었다

켜켜이 쌓인 계절 그리고 목소리의 내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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