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인 듯 컴컴한 낮에
여름의 시작인가 싶은 축축함 속에
사람들의 무심한 발걸음 밑에
조용히 한두 점, 땅이 젖는다
온 세상을 수채화로 물들이는 강우도
휴일을 딱 이쁘게 꾸며주는 이슬비도
모두의 옷깃에 선명히 남을 소나기도
그 어떤 이름도 아닌 비
누군가는 내리지 않았다고
누군가는 내리긴 내렸다고
곧 잊힐 대화 속에 잠시 스쳐 갈
어설피 뚝뚝 떨어지는 물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나는 안다
더 진해지려 더 또렷해지려
안간힘을 써 짜내고 있다는 것
이 비 같은 나는 안다
이러다 멎을 것이다
이렇게 끝날 것이다
애처로운 방울들 금세 지워질 것이다
계절에서도 기억에서도
나라도 끄적여 남겨야겠다
거센 발버둥도 희미할 뿐인
무상한 집념이 전부일 뿐인
오늘의 비처럼 내리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