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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Jun 08. 2023

나의 맛있는 어둠을

내 이름의 획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어둠

모두가 알고 모두가 앓고 있는

바로 그 어둠이다     


끈적거리고 칙칙한 어둠 덩어리는

온순한 척 기색을 숨기고 있다가도

예고 없는 균열 들이닥치면

거세게 흔들려 진공처럼 포효한다     


세계로 탈출해야만 하는 본성 품고

내 안을 미친 채 헤집는 어둠을

나는 단어와 문장에 힘껏 결박 지어

간신히 땅 딛게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글이란 빛을 향해 서서

미소로 매듭지어야 한다는 강박은

긍정주의자들의 가련한 부정이다     


더 이상 깊게 들어가선 안 된다는 만류는

우주의 속살을 끝내 마주하지 않겠다는

겁 많은 모험가의 울먹임이다     


끝 모를 그곳에 웅크리고 있는 괴수의

가죽을 벗기고 장기를 빼내어 핏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고 뜯어 씹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쌉싸래하고 역겹고 싱그럽다     


나의 맛있는 어둠을

정성스레 빚고 또 빚어 선보이는 시간이면

비릿한 향은 세차게 뜀박질하고

엇박자의 박동은 신이 나서 울려 퍼진다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끊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품어오고 나를 품어온

바로 그 어둠과의 낯 뜨거운 얽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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