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함을 알고
걷고 싶음을 아는데
어느 길인지를 모른다.
떨리도록 새롭지는 않다.
한 번쯤은 지나온 듯
묘한 기시감의 연속
마치 두 번째, 네 번째, 열 번째 같기도
그럼에도 갈피를 좇지 못하는
익숙한 우둔함은
온몸의 현재를 흔드는
유일한 떨림이다.
나아감은 다만
반복에 불과할 테고
실은 멈춰 서
길의 무너짐을 반기는 것이
눈부신 창조일진대.
도래할 새하얀 광장이
멍청한 행인을
눈멀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답답한 전진과
숨 가쁜 정지 사이,
땅거미가 한껏 늘어지며
살포시 다그침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