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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Oct 29. 2022

뻔한 가을에 적은 시

하늘이 유독 높은 계절이라던데

내게 있어 하늘은 늘 까마득한 이국의 영토다

괜스레 더 낮은 날도 더 높은 날도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 감사하고도

줄곧 그 자리만 있어 원망스럽다

본연의 칠흑을 내내 드러내고 싶음에도

날의 절반을 백색에 양보하는 아량이 그저

닿을 수 없는 나라의 고고한 미덕인가 보다     


말이 특히 살찌는 계절이라던데

내게 있어 말은 다만 혀를 딛고 박차는 음성과

얇고 흰 종잇장 밟아 뛰노는 글자뿐이다

사방에 덕지덕지 붙은 수식어구와 미구(美句)는

익숙해진 전염병처럼 나의 언어를 지배하고 만다

이토록 거대해진 말의 풍요한 갈기 부여잡고

고독히 질주하는 끝의 천공이란 결국

무모한 이가 바라 온 울림의 조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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