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라암
해라타워 2층, 관리사무소.
나는 이곳을 ‘해라암’이라 부른다. 불렀다.
복도 중앙에 넓게 자리한 이 공간은 마치 이 건물 심장부 같다.
다소 묵직하지만 고요하게, 사방에서 흘러든 소리와 기척을 받아 안고 있다.
사무실 문을 열면 데스크처럼 옆으로 길게 놓인 책상이 맞이하고 뒤로 서류장이 네 개가 나란하게 벽을 이룬다. 가벽 뒤로 들어서면 공원뷰가 펼쳐진 통창이 그날그날 날씨를 가득 들고 넓은 회의실에 부려 놓는다. 회의실이라기보다 나의 휴게실에 가까운 이 공간에 오늘은 통창이 햇살을 가득 부려 놓았다.
바쁜 발걸음도, 한숨 섞인 대화도 이곳에 있을 때면 한 호흡 느려진다.
마치 잠시 멈추어 자신의 리듬을 다시 조율하는 듯.
사람의 발길이 드물고, 바람도 천천히 지난다. 오늘은 햇살이 그랬다. 천천히, 지긋이.
회의실 커다란 테이블 한 쪽 끝에 오래된 다기(茶器)를 두었고,
창가엔 페페로미아 화분을 하나 놓았다. 손톱만한 작은 이파리에 햇볕 한 방울이 똑 떨어져 내려앉듯 유난히 파란 잎이 오늘의 첫 인사가 되어 주었다.
여기 오기 전, 나는 2년 동안 이 건물의 회계를 맡았었다.
그때는 복잡한 숫자와 서류가 내 일상의 전부였고,
때때로 눈을 들어 창밖을 보는 일이 유일한 쉼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다시 이 건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관리사무소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물었다.
왜 또 그곳으로 돌아가느냐고.
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동네라서.
대답은 간결했지만 사실 나는 이곳이 정이 많다. 입주 때부터 정리 해 놓은 행정업무도 내 손 안 탄 곳이 없어 익숙하고 입주민들도 친분이 있어 낯설지 않고 무엇보다도 내 능력을 인정해 주는 회사가 좋았다.
해라타워는 159세대의 오피스텔과 15개의 상가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수만큼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이야기들에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조용히 머물 수 있도록 구조와 기계를 살피고, 고장이 나면 제때 고치려 한다.
마치 낡은 절간의 종을 닦듯이.
이곳은 나에게 업무처리실이 아니라 작은 암자라 해도 좋다.
외부와는 느슨하게 단절된,
그러나 모든 소음을 품은 채 버텨내는 그런 공간.
그래서 ‘해라암’이라 했다. 했었다.
소장이라는 직함보다는,
한 사람의 머무름으로 이 공간을 이해하고 싶다. 싶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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