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흔히 이야기 속 먼 길을 떠나는 주인공에게는 그럴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들과 안락한 보금자리를 두고 험난한 길을 떠나는 주인공은 아무도 없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겪게 될 시련과 고생 끝에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을 찾게 되는 엔딩을 기대한다. 그가 얻게 되는 것은 분명 그 힘든 과정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일 테니까.
그 시절 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무엇이 되고 싶은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고향으로 도망쳤다. 내 안에서 가득 넘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는 삶에 지쳐있었고, 그러한 나 자신에게 질려버렸다. 나의 현재도 부족해서 과거와 미래까지 끌어안으며 허둥지둥 하루를 보내면서도 애써 희망찬 미래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떠나기만 한다면 나도 그들처럼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도 이곳을 떠날 거야'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평범하고도 초조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내가 고향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르바이트뿐이었다. 내가 일한 샌드위치 가게는 조선소와 가까이 위치해 있어 외국인 손님이 주를 이루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작은 봉고차에 손님들이 우르르 내려와 "Hi.", "Hello." 친근하게 인사하며 자리를 꽉 채웠다. 나는 카운터를 보다가 샌드위치가 나오면 서빙을 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어릴 때부터 외국 생활에 로망이 있던 나는 외국인에게 둘러싸여 일하는 것이 마냥 신났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가게였으나 영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나의 소박한 환상을 채워주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내가 바네사를 만난 건 초겨울이었다.
막 출근하여 가게 안에 들어오는데 휴지로 코를 막으며 훌쩍이는 체구가 작은 외국인이 있었다. 나에게도 부쩍 쌀쌀하게 느껴진 공기가 브라질에서 온 그녀에게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장님은 감기약을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여,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약국에서 약을 사다 주었다. 바네사는 어설픈 한국어로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네사와 나는 친한 손님과 점원 사이에서 깊은 속 이야기까지 하는 친구사이로 발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영어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와닿는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게 신기하다. 우리 사이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꿈을 바네사에게는 말할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여행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라고 그녀와 만날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다. 내 마음속에서 표현되지 못한 채 고여버렸던 것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바네사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수많은 의심을 뒤로한 채 확신에 차 신나게 재잘거렸다. 마치 정해진 미래를 이야기하는 유능한 예언가처럼.
어느새 바네사의 한국 근무기간이 끝나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녀가 떠난 후 한동안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커다란 공허함을 느꼈다. 바네사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희망이 가득했던 시간이 그리운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곧 그녀의 부재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바네사에게 이야기했던 내 꿈을 허공에 주술처럼 되뇌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미래에 대한 과장된 낙관과 실제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에 대한 비관 사이를 가파르게 오갔다. 꿈에 대해서는 확신에 찬 채 떠들어댈 순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에 대해선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마음 한구석에서 어떤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인생의 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서서히 자라났다. 사실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 확신까지는 없었다. 단지 이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답은 오로지 나의 힘으로 찾고 싶었다.
불현듯 2년 전 자주 방문한 카페에서 '브라질의 사막'이라는 글을 스크랩했던 기억이 났다. 이 사막은 하얀 모래에 군데군데 투명한 호수가 있는 신비로운 곳이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경관은 전율이 올 정도로 마음 깊숙이 각인되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런 곳에 갈 수나 있을까?'라고 선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저장했다. 오랜만에 스크랩해뒀던 글을 클릭해 보니 그 사막은 여전히 현실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상상 속의 나는 저 사막 한가운데를 유유히 걸으며, 발바닥으로 따스한 모래를 느낀다.
브라질의 사막을 떠올린 이후 이곳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를 '브라질 사막' 하나만 보기 위해 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갈만한 다른 여행지는 또 없을까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남미'라는 대륙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당시 나는 남미라고 하면 삼바 밖에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클릭을 하니 우유니 소금사막, 로라이마 산, 마추픽추, 이스터섬, 갈라파고스, 아마존 등 매력적인 명소가 가득 나왔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사진들을 보며 반짝이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여기에 내가 갈 수 있다면!'
무작정 남미에서 배낭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먼저 스페인어를 몇 개월 공부하다가 여행을 한다면 마음이 좀 더 놓일 것 같았다. 남미의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를 알면 혼자 여행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건 위험요소가 크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배낭여행 난이도 최상급이라 알려진 남미를 긴 시간 동안 혼자 여행할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언어 하나쯤은 알고 있는 게 유용할 거라 생각되었다.
남미를 갈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의 매력에 빠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네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 이후로도 우리는 메일을 계속 주고받았는데 남미에 가고자 마음먹은 뒤 곧장 바네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낯선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고, 브라질에서 공부하며 주변을 여행하다가 한 달 정도 남미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째서인지 그녀가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얼마 안 되어 바네사에게 답장이 왔다. 그녀는 나에게 열린 마음이 있다면 이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응원해 주며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학원을 함께 알아봐 주며, 자신도 스페인어를 할 수 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기꺼이 가르쳐줄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에도 바네사에게 큰 감사함을 느꼈지만 한해 한 해가 지날수록 되돌아보면 그녀가 얼마나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었는지 그 따뜻한 마음 깊숙이 느껴진다. 어떻게 나는 그런 어려운 부탁을 그녀가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또 바네사는 어째서 대가 없이 나를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을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 옆에는 늘 조력자들이 있듯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이 베푸는 친절을 받았다. 나를 지켜주는 듯한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한건 지도 모를 만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했다. 그중에서도 바네사에 대한 내 마음은 더욱 특별하다. 바네사가 없었더라면 이 여행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여행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었고, 그들이 손을 내밀 때 의심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나의 여행은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