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미 배낭여행을 다녀왔다고?
우연히 나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어김없이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남미’라는 단어에는 ‘위험하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있지만, 그 덕에 ‘배낭여행’이 뒤에 따라올 땐 ‘모험심’이라는 영광스러운 훈장을 준다. 남미 배낭여행은 많은 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남미는 아프리카와 함께 가장 위험한 여행지로 알려져 사람들에게 쉽게 선택받지 못하는 곳이다. 여행을 떠난 2013년에는 인터넷에 남미 배낭여행 후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20대 여성이 혼자 배낭여행을 가는 케이스는 더욱이 찾기 힘들어 이대로 떠나도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했다. 그런 곳을 첫 배낭여행으로 갔으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놀라는 반응 속에는 남미라는 흔치 않은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정말 의외인걸?’이라는 표정에 조금은 머쓱해지긴 하나 나 역시 그 반응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거울 속에 나를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남미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남미 배낭여행과 꼭 들어맞는 스테레오 타입의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때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그런 반응에 수긍할 수밖에. 물론 순순히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뒤이어서는 언제나 “대단하다!”, “멋진데?”, “용감해!” 하며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는 찬사가 따른다. 쿨한 척해도 올라가는 입꼬리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곤 남미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데, 주로 “어디가 가장 좋았어?”, “위험한 일은 없었어?”, “숙소는 어떻게 정했어?”, “경비는 어느 정도 들었는데?” 등등을 물어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도대체 왜 남미까지 간 거야?”라며 여행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배낭여행은 그 자체로 ‘청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젊을 때라면 그럴만하지”하는 관대한 시선이 존재한다. 젊은이라면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미소를 보이며 기꺼이 인정해 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그러한 호의적인 태도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남미에 가는 이유를 묻곤 했다. “굳이 큰돈을 들여서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간다고?”, “우선 졸업하고 취업부터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해야 할 일들을 미룰 만큼 중요한 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예리한 바늘에 찔리는 듯했다.
그건 나 역시 수없이 스스로 했던 질문이었고 늘 적절한 답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살얼음과 같은 마음은 꼭꼭 감춘 채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오래 여행할 수 있겠어?”라며 태연한 척 맞받아쳤다. 이미 내 마음속에 자라난 불안이 한없이 부풀어진 걸 애써 외면한 채.
여행을 떠나고 나서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여행하는 내내 이러한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책장 뒤에서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을 즐겨야 해! 카르페 디엠!!’이라고 소리쳐봤자 전혀 들리지 않는 거다. 그저 배낭을 짊어지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 고통과 전혀 무관한 사람처럼 “그땐 그랬었지”라고 무심히 말하곤 한다(그럴 때마다 적잖이 놀란다). 결국,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거다. 뜨거운 열정의 불씨가 모조리 타버려 새까만 재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두려움을 이겨내고 당장 떠나세요!”라고 내뱉으며 무책임하게 부채질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의 여행 속에는 이유 따위는 설명할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두 눈에 가득 담았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경과 다정했던 사람들, 힘차고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두 다리, 그리고 남미 여행과 꼭 어울리는 꾸밈없는 내 모습을 지금도 너무나 그리워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