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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Aug 04. 2020

버틴다고 달라질까?

달라질 수도 있다

직장인들의 잠언 중에서 "실력 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자가 결국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버팀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막상 오면 가장 힘든 것이 끊임없이 드는 의문과 회의감인데 그 힘듦의 끝에 과연 영광이 있을까, 그 가치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돌이켜보면 그랬던 적이 있었다. 나의 첫 브런치 북 제목은 "당신의 출근도 즐거워지기를"이고,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출근이 즐거운 편이라고 결론 내리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그렇다고 늘 행복한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나는 출근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벌써 들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퇴사를 해야만 할 주요 이유를 명확히 세 가지 꼽을 수 있었는데, 그 세 가지는 내가 뭘 한다고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것들이었다. 첫 번째는 8시 출근이었는데, 다들 2~30분은 일찍 오는 분위기에 집에서 출근하는 데에 1시간이 걸리니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으로 아침잠이 많은 나에겐 치명적인 요소였다. 그렇다고 일찍 끝나는 것도 아니라 늦게까지 야근하고 아침에 1시간 반씩 일찍 출근하는 삶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직속 상사였는데, 사내에서 악명 드높은 팀장도 모자라 그 팀장이 오히려 좋게 느껴질 만큼 나와 도저히 맞을 수 없는 파트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업무는 떠밀고 성과는 가로채는 것도 화나는데 심지어 나를 본인의 기복 심한 감정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듯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세 번째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업계의 특수성인데, 주변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영업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냥 시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적화하여 주기적으로 압박을 주는데, 업무 외적인 것으로까지 시달리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관계의 지인들에게 부담을 줘야만 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도 신중하게 결정해서 이직한 곳인데, 얼마 해보지도 않고 속단하여 널뛰는 것은 또 나의 스타일이 아니기에 일단은 묵묵히 버텨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버티다 보니 그 세 가지가 모두 해결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이후에는 직장생활 10년 넘는 기간 중 가장 많이 배우고 업무적으로도 제일 즐겁게 일하는 경험도 바로 그곳에서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세 가지가 전부 그냥 운 좋게 알아서 바뀌기만 한 것들은 아니었다. 첫 번째 출근 시간의 변경은, 그동안 몇십 년을 고수해왔던 회사 정책이 놀랍게도 갑자기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 맞으니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을 인정하겠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도 분명히 노력을 하였다. 일단 파트장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장에게 진솔한 태도로 SOS를 쳐서 업무를 약간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그런 과정에서 악명만 들렸던 팀장의 숨겨진 배울 점도 발견하게 되고), 그리고 파트장에게도 직접 솔직한 대화를 시도하여 감정적인 불편함을 다소나마 해결하였다. (이 경험은 다른 글 자세히 기술한 바 있음) 세 번째, 지인에게 해야 하는 영업 할당량에 대해서는 사내 게시판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안건으로 건의를 하였다. (다들 불만이 있어도 찍힐까 봐 막상 하지 못하고 있던 건의였다.) 내 글에 동의하는 다른 지지 글들 덕인지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영업 할당량은 극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5년 남짓 버티다 보니, 그 사이 출근 시간은 9시까지로 바뀌었다가, 심지어는 자율 출근제까지 되었고, 직장생활 역사상 가장 불편한 사이었던 파트장은 자발적으로 퇴사를 하였고, 지인에게는 영업을 더 이상 안 하더라도 회사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분위기로까지 바뀌었다. 직장 생활의 3대 요소, '돈, 업무, 사람' 이 세 가지가 다 만족스러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중에서 두 가지라도 어느 정도 충족된다면 해피한 경우이니 일단 무조건 버텨보라고 한다. 한 곳에 머물면서 '연봉'이 극적으로 오를 일은 없고, 입사를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알고 선택을 하는 것이니 논외로 하고, '업무''사람'변화하는 환경, 그리고 본인 하기에 따라서도 분명히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나처럼 그 외의 것들 중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조금 버텨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세상은 생각보다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버티지 못해 도망간 곳에 더한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살다 보니 거슬리는 것도 이렇듯 알아서(+일말의 노력?) 해결되는 경우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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